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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Nov 15. 2019

비상

마음껏 날고 싶은 그대에게


 내게 2017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이다.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오가며, 병원에서 새벽을 맞이한 것도, 내발로 응급실을 걸어 들어간 날도 여러 밤이다. 

나는 그 해 봄날 치료가 필요한 병에 걸린 것을 알았고, 일도 육아도 내려놓고 치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암이었다. 


가슴 모양새가 이상하다 싶고, 멍울이 만져지는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유두가 자꾸 들어가고 가슴에 멍울이 만져져서요.”

의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무서운 얘기를 하세요.”

난 담백하게 대답했다.

“사실이니까요”     

의사는 나를 눕혀 놓고 촉진을 했고, 이런저런 검사를 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당일 검사 결과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가슴에 바늘을 찔러 넣어 세포 검사를 했다. 빠르게 진행되는 검사과정과 검사를 진행하는 의사의 얼굴로 보아 비관적이었다. 내가 암일 수도 있다는 확률이 높아지고 있었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보기로 했다.      

유방암이었다. 노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어두운 표정으로 결과를 전하는 의사는 항암을 먼저 하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수술을 하자고 했다. 크기로 보아 전절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절제는 가슴을 모두 도려내는 것이다. 복원은 힘들다고 했다. 

항암이 뭔지 말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몰랐던 나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항암은 힘들 것이라고 했다. 직장도 쉬어야 한다고 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가장인 내게 일을 하지 말라니... 아득했다.      

“밥은 할 수 있나요?”

“할 수는 있겠지만... 힘드실 거예요. 항암 하고 1주일은 옆에서 돌봐주시는 분이 있어야 할 겁니다.”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나는 엄마인데 밥도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누가 나를 돌본다는 말인가.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살림은 어쩌란 말인가...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한다는 말인가...

그 흔한 보험도 깨고 없었다. 

‘설마 내가 암에 걸리겠어?’ 싶은 마음에 몇 년 전 보험을 정리한 탓이다. 

‘하필 내가 왜?’라는 원망은 없었다. 내겐 닥친 일을 처리하는 게 더 급했다. 아이들 케어와 치료, 그리고 어떻게 이 모든 상황을 정리를 해야 할지가 더 중요했다.      

부모님이 아시면 걱정을 하실까 봐 그게 더 걱정되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마침 부모님은 미국 갈 비행기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아시면 엄마가 안 가신다고 할 텐데... 계획된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될까 봐 싫었다. 

나는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고 병원 검사를 이어갔다. 병원을 옮겨 다시 검사를 하고 수술 날짜를 받았다. 옮긴 병원에서는 가슴 복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헤벌쭉 웃음이 났다.      


수술 후 한 달의 회복기간을 갖고 항암을 시작했다. 항암을 하며 나의 컨디션은 좋아졌다가 안 좋아 지기를 반복했다. 항암은 그런 것이었다. 머리가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근육통에 밤새 끙끙 앓고 면역력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 했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무거운 다리가 버거워 눈물이 찔끔 났다. 얼굴은 호빵처럼 부었고, 손톱은 까맣게 변했으며 발톱은 피가 뚝뚝 흐르다가 결국 빠져버렸다. 내 인생 중 가장 못생김을 걸치고 다니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만났다.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오는 이도 많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고맙고 뭉클했다.

검사부터 늘 곁에 보호자처럼 있어준 친구, 병상을 배우자처럼 지켜준 친구, 잔소리 담당 엄마에, 말벗이 되어주던 지인들. 한번 다녀가는 것도 시간을 내어야 하는 일인데, 몇 번이고 찾아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한 환자놀이를 할 수 있었다.      

병문안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요즘은 꽃을 선물할 수 없다는 것. 입원을 해서 병문안을 받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병으로 된 음료는 쌓이고 쌓여 퇴원할 때 짐이 됨을. 그래서일까?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봉투를 주고 간다. 받는 사람 필요할 때 쓰라고 말이다. 받을 때는 민망하지만 쓰게 되는 순간엔 고마운 게 현금 아닌가. 병문안을 갈 때면 늘 먹을 것을 챙겨갔는데 생애 처음 입원한 환자 경험 후 현금처럼 고마운 게 없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일도 안 하는 백수인지라 용돈처럼 쥐어주는 봉투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다녀간 사람들의 하나같은 말은 애들 걱정 말고 내 몸 하나만 챙기라는 것이었다. 밥은 할 수 있냐고 물었던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애들 밥걱정을 하지 않고도 요양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가끔 몸은 좀 어떠냐며 물어주는 지인들의 연락이 오면 컨디션이 좋은 날을 만나 얼굴을 봤다. 그들 대부분은 밥을 사주었고 또 나는 그렇게 맨입만 가지고 나가 얻어먹기가 일쑤였다.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고,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싶은 날들을 보냈다. 나는 아프기만 하면 됐고, 기꺼이 견뎌 내기만 하면 됐다. 

나의 투병생활은 주변 사람들 덕분에 수월했음을 안다. 눈썹이 다 빠져도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 내가 본 항암 환자 중에 젤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덜 힘겹게 견딜 수 있었다.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 속상해하는 내 모습을 본 엄마는 “그게 뭐가 중요하니? 건강만 회복하면 되지.”하시고, 가슴 복원을 하려는 내게도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고생해서 그걸 만들어?” 면박을 줬다. 엄마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내겐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그깟 가슴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던 엄마는 내 눈썹이 다 빠지자 요즘은 속눈썹도 붙이더라며 등을 떠밀었고, 평생 매니큐어라고는 발라본 적도 없는 양반이 딸내미 손톱이 까맣게 되자 네일 샵에 다녀오라며 잔소리도 했다. 보이지 않는 가슴은 중요하지 않다더니 눈에 뵈는 모양새는 신경이 쓰이셨나 보다.      

한 번은 친구와 점심을 먹고 헤어지려는데 손에 봉투 하나를 쥐어준다. 


“예쁜 모자 하나 사서 써”라며...

“지난번에도 줬잖아!” 손사래를 쳤다. 이미 병문안을 다녀간 친구였다. 

“뭣이 중헌데!”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멀어져 갔다.      

“뭣이 중헌데...” 

관람객이 제법 상한가를 찍었던 영화의 대사였다.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보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져서 그 대사는 알고 있었다. 

뭣이 중헌데... 나는 그녀에게 몇 푼의 금전보다 중했나 보다. 머리가 빠지는 걸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눈치챈 그녀의 배려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우리는 졸업 후 전공과는 다른 직장 생활을 하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 얻은 건 학문도 아니요, 직업도 아니요, 오로지 ‘너 하나’라고 할 만큼 견고했다. 그런 그녀가 너무도 고마웠다. 내가 중요하다고 말해줘서... 내가 속상해하는 것을 함께 아파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 때가 많다. 중요한 것을 몰라서 일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알지만 다른 급급한 일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느라 놓치기도 한다. 삶의 우선순위가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살다 보면 매번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헷갈리기도 한다. 

선택의 순간 중요도를 정확히 파악해 좋은 선택만 해도 인생은 실수가 적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무엇이 중한지 놓칠 때가 있다. 놓칠 때는 모른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다. 그때 중헌 것이 중헌 것임을  몰랐음을 말이다. 

     


암이라는 말을 듣던 날, 아이들의 끼니가 중요해 밥은 할 수 있냐고 물었던 그 질문이 내게는 무엇보다 간절한 것임을 안다. 나보다 아이들 걱정이 우선이어서 앞이 캄캄했던 그날을 어찌 잊으랴. 하지만 수술방을 나와 마취가 풀리고 갈비뼈를 떼어내 간 것 같은 고통으로 허우적거리던 밤, 온전히 고통이 내 몫이던 그 밤, 나를 보살피는 일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고 중요함을 알았다.  


내겐 여전히 아이들이 중요하다. 일도 중요하다. 생계가 중요하다. 사람이 중요하다. 가족이 중요하다. 선의가 중요하고, 약속이 중요하고, 믿음이 중요하고, 성장이 중요하다. 

그 많은 중요한 일들 사이 또다시 경중을 따지는 일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늘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 저울질하듯 경중을 따지다 보면 잃고 나서 후회하거나 방황할 일은 적어질 것이다. 경중을 가늠하는 일은 지혜가 필요하고, 나이가 든다는 건 지혜가 쌓이는 일이어야 할 텐데, 후회할토닥토닥하려면실어야 함을 일을 덜 만들며 잘 나이 들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훗날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토닥토닥 하려면 급한 일에 현혹되기보다 중요한 일에 무게를 실어야함을 잘 알고 있다. 


중헌 것을 구별하는데 조금 밝아진 것이 아프면서 배운 삶의 지혜라고 하면 지나친 자만일 수도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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