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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날개달기 Jan 31. 2023

팬티엄급 은행PC

기계들과의 전쟁

- 아, 씨..   어머나, 고객님 죄송해요, 갑자기 피씨가 꺼져서요.. 괜찮으시면 옆자리에서 다시 진행해도 괜찮으실까요?



- 점심시간에 나온 건데.. 얼마나 걸려요?



-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서요. 15분은 걸려요. 죄송합니다.



- 신청서 썼으니 1시간 후에 찾으러 오면 안 돼요? 지금 바로 가야 되는데.



- 그게 전자문서라 저장됐는지는 피씨 켜봐야 알 수가 있어요. 그리고 저장돼 있다면, 마감하고 처리해드려야 해서 6시쯤 가능해요. 뒤에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 6시요? 아니, 무슨 은행이 이래요!



- 죄송합니다. 갑자기 피씨가 꺼져서요. 지금 거의 다 부팅 다시 됐어요.



- 아니, 제 잘못도 아닌데 왜 제가 피해를 봐야 하죠!



또 느닷없이 피씨가 꺼졌다.



느려터진 것도 이해하고 이해하면서 쓰는데, 갑자기 꺼져버리면 정말 답이 없다.



전자문서로 신청서 받고, 신분증 스캔해서 올리고, 모든 업무를 피씨로 하는데 모니터가 온통 파랑이 되면서 다운돼 버릴 때는,



미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앞에 앉은 고객도 잘못 없지만, 실은 처리한 은행원이 제일 억울하다.



피씨가 오래되고 CPU가 무거워서 느리다 못해 꺼져버리는데,



그래도 사과하고 읍소하는 것은 컴퓨터가 꺼진 자리은행원의 몫.



- 고객님, 불편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피씨가 켜지고 있긴 한데 프로그램들 켜지는데 조금 더 걸려요. 혹시 종이 신청서 다시 써 주실 수 있다면, 이따 6시쯤 처리하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 아니, 왜 6시예요. 4시에 문 닫는 거 아니에요?



- 4시에도 오시는 고객님들이 계시고, 처리한 수표 등을 보내는 작업을 해야 해서 6시쯤 해드릴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 아, 그럼 그냥 해줘요! 빨리!



- 네, 어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차마 고객한테 못한 말은, 또 꺼질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저렇게 화난 고객한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괜한 소리 했다가는 욕지거리만 들을 수도 있다.



그저 무사히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 아까 너무 고생했죠, 저도 오늘 단말이 몇 번 꺼졌나 몰라요. 게다가 너무 느리고.



- 아니, 은행 당기순이익 몇천억 벌어다 주는데, 기재부는 왜 피씨 살 돈도 안 주나요. 무기 없이 전쟁터 나가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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