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후배의 퇴사 소식
- 나도 악성 민원인인가?
민원인이 모두 악성 민원인은 아니다. 악성 민원인은 철저히 의도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게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설정해 놓고, 은행 직원이 그 내용을 추론해서 말하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은행 직원을 최대한 괴롭혀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원하는 금액을 피해 보상금으로 받고서, 바로 다음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화가 나서 고객센터에 전화하거나 글을 남기는 사람은 그냥 '민원인'이다. ‘악성 민원인'들은 꼭 붙이는 말이 있다.
- 00 대리님, 00일 00시까지 어떻게 보상해 주실 건지 연락 주세요.
이런 악성 민원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근저에는 은행 등 서비스 업종은 무조건 굽신거려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 죄송합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면, 사과하지 않아야 한다. 요즘 일부 기업이나 개인 영업장에서 심심치 않게 '우리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손님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볼 수 있다.
아직 보수적인 은행은 그런 제도가 없다.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것은 담당 직원의 잘못이다. 컴퓨터가 고장 나서 갑자기 은행업무를 처리할 수가 없을 때도, 느닷없이 정전이 되어도 그저 죄송하다.
그런데 생각해봐야한다. 의도한 악성 민원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 나도 언제든 악성 민원인이 될 수 있다. 명심하자.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한 은행 후배가 대뜸 은행을 그만뒀다고 했다.
- 벌써 그만둔 지 1년이 다 되어 가나 봐요. 먼저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아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만뒀어..
주재원 아내로 사느라고 4년 전 내 옆에 앉았던 그 신입직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신입이기에 하는 실수들이나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일들을 옆에서 다 지켜봤었다. 바쁜 와중에 속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신입이기에 그런 모습들이 귀여웠다. 그저 해맑아 보이던 그 아이가 퇴사를 했다니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퇴사를 결정했을까, 그 마음을 옆에서 안아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나도 다 겪었던 일이라고, 다 지나간다고 말해줬을 텐데..
- 저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또 공부하네요. 끝이 없어요. 하하.
- 공부하는 애가 전화 붙잡고 있냐. 어서 꺼놓고 공부해.
핀잔하듯 말했지만 그렇게 하는 게 그 아이도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어렵게 들어간 은행, 그만뒀지만 그까짓 퇴사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는 말에 그 정도의 사연없는 사람이 어딨냐며 지금부터 더 잘 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간섭이나 참견대신 솔직한 내 진심으로 쐐기를 박았다.
- 잘했다, 잘했어. 부럽다!!! 은행 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