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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되는 가슴을 무엇으로 막을까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중에서
설보다 큰 환대받던 정월대보름이 숨 가쁜 시절 달력에 숨어 있어 홀대를 받는 꼴이 안타깝다
하늘을 보고 살던 삶이 땅을 보고 사니 이렇게 된다
우리네 몸의 리듬이 절기보다 촌각에 기대니 허전
번잡하다고 밀쳐둔 것들의 가치를 새삼 들쳐본다
각자의 우주는 자주 궤도를 벗어나 딱한 고아가 되어 표류한다 자유롭게 그냥 자유라고 착각한 채
보이는 것들에만 마음을 주고 사는 것이 속되다
놓치는 것들을 잘 골라 챙기는 것이 가장 숭고하다
축하의 탁자가 점점 작아져 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서로라는 단어는 점차 쓰임이 없어 사라질 것이다
이 변질된 영혼들을 무엇으로 이어붙일 수 있을까
오늘은 사랑하기로 다짐한 자들만 달을 허락하리라
까마득하고 철두철미한 안개를 걷어낼 용기는 때아닌 하품을 하고 무심한 마른 세수를 할 때마다 요구되어 당혹해진다 : 해야할 것을 놓치는 형벌들
부럼깨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