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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지고 있는 것이 마주 보는 것이라는 역설을 보여주는 경우가 우리네 주변에는 비일비재하다
가둬둠으로써 얻게 되고 열어둠으로써 잃게 되는
멈춤으로써 가능해지고 달림으로써 불가능해지는
혹은 이것이 한쪽에서 동시에 발생하거나 중단되는
그의 그 점때문에 사랑했다가 그 점때문에 떠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나의 가장 약점이었던 부분
소멸했다고 끝을 선언한 순간 찬란한 시작이 되는
고마우면서도 원망하는 서운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떠나기 위해 짐을 싸면서 도착하는 마음을 챙기는
웃지만 웃는 게 아니라고요
미워한다고 거듭 외치며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는
뜨겁지만 시원했던 그날이 욕탕에만 있지 않았으니
그토록 손 흔들며 말하던 안녕이 어서 오라는 이내 반가운 손짓인지 어서 가라는 눈물겨운 손짓인지도
책을 덮으면서 비로소 막막했던 독서는 시작된다
선을 긋는다
구분짓기 위해서 그었으나 무엇과 깊게 연결되는
강하게 잡는 손의 모양은 잘 놓쳐버린 형태의 전형
강렬한 빛이 내리쬐는 곳에는 눈부신 슬픔의 꽃이 핀다 흐드러지게 핀다 흔들리며 춤을 추다가 진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시든 잎과 새 잎이 공존한다
지금 살아있는 이유는 세포가 제때 죽어준 덕분
'사라진다'와 '살아진다'가 입 바깥으로 말하는 순간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