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90호
아버지와 나와 지렁이
김 수 영
저녁 무렵 아버지와 나는 우물 곁 컴컴한 무화과 그늘에서 지렁이를 잡는다. 굵은 지렁이는 어머니가 키우는 닭한테, 실지렁이는 아버지 미끼통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아버지는 며칠씩 바다에 가실 것이고, 그동안 나는 빈방에 누워 아버지는 어디쯤 있을까 생각할 것이다.
지렁이는 검은 이끼 아래 숨어 산다. 그늘진 우리집 어디서나 나온다. 지렁이는 아버지 손안에서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그림자를 만든다. 눈이 먼 지렁이는 땅속에서 제 그림자를 먹고 사나. 그 축축한 몸이 검은 이끼로 가득 찬 긴 그림자 같다.
아버지가 밤새 낚시짐을 싸는 소리, 엄마가 숨죽여 우는 소리, 할머니가 염불을 외는 소리 사이에 내 귀를 때리는 쏴쏴 어둠이 내는 소리. 점점 낮아진 천장이 내 눈 가득 검은 점으로 보일 때면 온몸이 축축해진 나는, 지렁이처럼 땅을 파고 들어가 깨지 않을 긴 꿈을 얼마나 꾸고 싶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고전을 꺼내 읽는다
번역투가 어색하나 문장들이 묵직하다
예전에는 갸웃했던 대목이 다시보니 끄덕한다
한세기를 건너도 사라지지 않는 고유한 힘이 있다
잔 기술을 부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나아간다
습자지같은 사고가 두툼하게 불려지는 기분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주인공의 실패는 나의 현재
이야기는 궁지의 연속이지만 절망을 안기지 않는다
오월에는 고전을 굳이 찾아 읽는다
첨단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다
제대로 된 과거에는 미래에게 건네는 비밀이 있다
그물만 던지면 획득되는 지혜가 있다
https://youtu.be/eRSKlNlxByU?si=1-rn_ToRj0W-OF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