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라고 그랬니
<기본 문형>
내가 뭐라고 말했니?
<응용 문형>
아휴 애초에 내가 뭐라고 했어?
내 말이 맞아 안 맞아?
늘 모든 행동에는 후회가 남습니다. 아무리 신중하게 판단해도 그 결과가 좋지 못할 수도 있죠. 무척 속상한 마음을 가까운 이에게 내 비칩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넋두리가 되기도 하고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듣고 있던 상대도 그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함께 속상해합니다. 그 안타까운 심정의 첫마디로 흔히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대체로 가족이나 친구 같이 매우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용빈도가 높습니다. 이 표현이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엄청난 후폭풍과 같은 잔소리를 예상해야 합니다. 듣다 보면 이것은 공감을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야단을 맞는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나를 위한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죄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으로 들립니다. 대체로 이 표현을 말할 때의 톤은 높고 날카롭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섭섭함과 책망이 곁들여져 있어서 오래 들으려면 적지 않은 인내심도 요구됩니다. 이 말을 들을 때에는 인연이라는 단어가 연상됩니다. '넌 그와 만날 인연이었어!'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데, 이는 결과에 맞추어 원인을 짜 맞추는 식이라는 겁니다. 만났기에 인연이 아니라 인연이라서 만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세상만사가 거저 주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에서 입니다.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뭐라고 그랬니?'라고 말하는 이의 처지도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헤어진 것은 인연이 아니라는 건데, 내가 말한 대로 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무책임한 장담으로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II 달리지 못하는 말에게는 홍당무를 주세요
먼 훗날 저 길 어딘가에서
한숨을 쉬며 말할지도 모른다
그 숲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나의 인생은 달라졌다고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입니다. 인간은 실세계에서 하나의 육체,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서만 존재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숙명처럼 삶의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하죠. 그런데 어떤 선택은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어떤 선택은 그렇지 못해 결과가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때 곁에 있는 우리는 객관적인 시선이다 보니 그 실패 원인이 더 잘 보여서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때 그 욕구를 꾹 참고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그랬구나,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니? 너의 선택을 존중해.' 그렇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면 당신이 언젠가 했는지도 안 했는지도 모를 훌륭한 조언의 한마디보다 더 감사해할 거예요. 곤경에 처했을 때에 전문가 같은 원인 분석보다 따뜻한 위로 한마디가 가까운 이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