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같은 하루

챌린지 127호

by 이숲오 eSOOPo

헛되이 나는


조 용 미



헛되이 나는 너의 얼굴을 보려 수많은 생을 헤매었다

거듭 태어나 너를 사랑하는 일은 괴로웠다


위미리 동백 보러 가 아픈 몸 그러안고서도, 큰엉해안이나 말미오름에서도, 빙하기 순록과 황곰 뼈의 화석이 나온 빌레못동굴 앞에까지 와서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저 멀구슬나무나 담팔수, 먼나무가 당신과 아무 상관없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이 생이다

너에게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가지 않으려고


헛되이 나는, 이 먼 곳까지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날이 지나고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도 한치도 외롭지 않은


아 무지 고요해서 평온해지는 시간에 둘러싸여


가라앉은 마음의 침전물을 한 톨씩 집어 걷어낸다


헛된 순간은 없었다고 중얼거리며


모든 것의 부족한 결과는 나로 말미암아 그리 되었기에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고

알아보지 못해도 서운해 않는


다시 옷깃을 여미고 발끝을 가지런히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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