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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시집

귀로 들어도 코로 마셔도 좋을

by 이숲오 eSOO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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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지극히 청각적이다


첫 시에서 시어 관음보살이여 / 성모여 로 시작하여

수선화 꽃 같은 소년아 에 이르기까지 63편 시 중 9할에 육박하는 시들이 모두 소리를 가지고 있다

(직접적인 소리가 없는 시 안에도 소리의 여백이 존재하므로 어떤 시도 소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도시에 줄곧 살던 시인은 5년 간의 제주 생활을 보내며 사람보다 자연과의 관계를 돈독히 한 듯


그저 바라보면 고요할 자연이 시인에게 건네 온 말이나 자연이 스스로 내는 목소리를 채집한다


자연이 몸부림 칠 때마다

계절이 기지개 켤 때마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음들을 시로 스케치한다


이 시집은 자연이 역동하는 순간의 소리 녹음집


도시에 사는 이들이 얼마나 심심하게 사는지 자연의 수다와 분주함을 보면 기가 죽을 것이다


가을 어느 날 숲으로 떠날 이의 겨드랑이에 살포시 끼워주고픈 이 시집은 문태준의 <풀의 탄생>이다


*63편은 肉삶으로 읽힌다 생명의 생기로움

2

이 시집은 지독히 후각적이다


첫 장의 오리너구리부터 마지막 장 수조 속 뱀장어까지 페이지마다 코를 자극하지 않는 시가 없다


냄새 풀풀 나는 동물이나 장소는 화자의 내면 혹은 확장된 신체로 보인다


우리는 현상보다 현상 너머 혹은 피부에서 감각되는 것들에 할 말이 무수하다


심지어 이 시집은 이를 증명하듯 거꾸로 엎어 놓으면 장편소설책으로 오해할 정도로 두껍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때의 수다스러움은 당연


끝도 없이 말하는데 고요가 느껴진다


문태준 시가 적게 말하면서 쩌렁쩌렁했다면

이 시집은 많이 말하는데 오라의 향기만 남는다


여행에서 돌아와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잊었던 내 안의 야생성을 맡고 싶다면 이 시집을 권하고 싶다


이 시집은 신이인의 <검은 머리 짐승 사전>이다


*축농증 질환이나 코감기가 걸린 경우 잘 안 읽힐 수 있으니 사전에 뚫어뻥으로 해결하고 볼 것

뱀의 발꼬락

'두 권'이라고 말해버리면 사물에 치중한듯 하여

'두 번'이라 고쳐 써 본다

시 읽기는 체험에 가까우니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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