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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01. 2022

나의 초능력들 10

책 곁에 두기 : 어차피 숲이었을 혹은 숲이 될

책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유쾌한 부작용들


지금 가방 속에는 다른 소지품 사이에 책이 들어 있다. 그날의 바이오리듬에 따라 혹은 눈에 띄는 감각에 따라 방 3면으로 둘러싸인 책장에서 아무거나 뽑아 담는다. 읽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도 어제와 같이 들고나갔다가 한 장도 펼치지 않은 채 들고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고 들고나간 수고를 후회한 적은 없다. 그것도 책을 '읽은 것'에 준하는 '겪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말수 적은 친구와 하루를 보내다 귀가해도 그와 지낸 것이지 않은가. 책은 언젠가부터 주민등록증같이 지니고 다니는 휴대전화와 더불어 필수품이 되었다. 신분증 제시나 검사할 일이 없다고 해서 그것의 소지가 무의미하지 않다. 불시에 나를 확인하려면 겉으로는 거울이 필요할 테고 내면으로는 책이 유용하기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이불에 지도를 그리던 내가 커서는 책에다 침으로 지도를 그리곤 한다. 켜켜이 종이로 쌓아 만든 책 베개는 쪽잠마저도 감미롭게 한다. 책을 사면 자랑을 잔뜩 새겨놓은 책 허리띠를 풀고 두 엄지로 책 배를 가르며 얼굴을 파묻고 맡는 책 내음은 어린 시절 자동차 배기가스보다 구수하고 중독적이다. 이 냄새는 바퀴벌레가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내 전생을 의심케 한다. 두꺼운 하드커버의 책은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하는 밤 귀갓길에 호신용으로도 쓸만하다. 가슴에 곱게 안고 다니다가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느끼면 그때 책의 모서리로 정수리를 가볍게 내리찍으면 치한은 급소를 맞을 때 정도의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에 떼구루루 공벌레가 될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때의 설렘은 마트에서 카트에 술과 안주거리를 담을 때보다 크다. 이 세상에는 먹고 싶은 것들이 쏟아지듯 이토록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 자주 옷을 보러 다니면 안목이 생기듯이 자주 책들을 아이쇼핑하다 보면 적어도 겉표지에 현혹되어 실패하는 책들을 사는 경우가 줄어든다. 도착한 책들은 내 주위에 심어둔 책나무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그들과 조화되어 숲이 된다. 그렇게 한참을 두면 어느 날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어서 나의 아침 가방 소지품으로 간택되고 대중교통 이동 중에, 약속을 기다리는 어느 느슨한 카페에서 읽힌다. 인연이 맞으면 며칠간 서로 끈끈한 유대와 교감을 나누고 헤어진다. 대부분의 책들은 읽었거나 읽힐 그날을 위해 자가 숙성 중이다. 처음에 맛보았다가 숙성 후 그 맛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첫 독서로 책을 판단하지 않는 편이다. 


가끔씩 말이 어눌해질 때엔 책을 읽는다. 독서와 화술의 연관성을 믿는다. 강의를 앞두고 있는 경우 낡은 언어를 리프레쉬하기에 독서만한 언어정화장치가 없다. 자꾸 읽는 이야기 하니 나의 초라한 능력이 독서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말로 큰 오해다. 나는 책을 옆에 두거나 지니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거나 그냥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름하야 '책 해찰'쯤 되겠다. 책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넘치는데 오늘의 글쓰기는 눌변에 가깝다. 다시 책을 집어 펼쳐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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