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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08. 2022

나의 초능력들 16

골목 배회하기 : 평지에 펼쳐진 골짜기

모든 것이 가능했던

모든 일이 일어났던  


동네마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 일은 산 중턱에서 약수터를 찾는 일처럼 어려워졌다. 우연히 낯선 지역을 방문했다가 골목을 만나게 되면 본래의 코스가 아님에도 들어가 배회하기를 기꺼워한다. 골목의 좌우에는 낮은 담장을 두르고 작은 창을 낸 집들이 촘촘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 마주한 집들 사이로 길이 나있는데 이름도 정겨운 골목길!


골목의 어원을 찾아보았으나 이렇다 할 명확한 설명들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유추하는 수밖에! 골목의 '골'은 골짜기가 아닐까. 동네가 깊을수록 골목들은 무수히 많았고 굽이졌다. 산을 눕혀 놓으면 깊은 산 골짜기가 골목이 될 것이고 펼쳐진 동네를 세워 놓는다면 골목이 골짜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골목의 '목'은 중요한 장소의 좁은 통로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인체의 목도 연상되고 어떤 좋은 위치를 뜻하기도 하니 그렇게 봐도 좋을 듯싶다. 골목은 거시적 시선에서의 형상을 의미하는 '골'과 미시적 시선에서의 모양을 뜻하는 '목'이 합쳐진 단어이다. 그 역할이나 기능보다는 생김새가 이름에 담긴 것으로 보인다.


골목에서는 모든 것들이 가능했고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현장이었다. 비석 치기, 다방구, 술래잡기, 말뚝박기, 고무줄놀이 등을 하며 오락실이나 놀이동산이 되기도 하고, 한쪽 편에 놓인 평상에 앉아 각자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 가난한 음식들을 함께 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풍족한 정을 나누는 장소였다.


이제는 개발이라는 아름다운 명분의 가면을 쓴 폭력에 의해 그 무수했던 골목들이 급하게 사라지고 있다. 골목들을 만나는 경우가 귀하다 보니 보면 우선 눈으로 더듬고 발걸음을 그곳에서 떼지 못해 한참을 머문다. 곧 사라질 무지개를 본 듯 셔터를 눌러대고 이 골목을 지나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들을 상상해본다. 다음에 오면 골목의 주변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사이로 보이는 골목의 모습은 얼마나 스산했는지 모른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사라져 가는 골목을 배회하는 일이다. 골목은 동네에 흐르는 모세혈관들이다. 혈액 같은 사람들의 끝없는 통행이 있었기에 동네의 온몸은 따뜻하게 유지되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은 수족냉증 환자가 되어버린 동네는 골목을 가지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지 않는 것 같아 서글프다.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서로의 담을 높이 치고 사이에 큰 도로를 내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기에 더 합리적이고 편리한 환경인지는 모르겠지만 골목과 맞바꾸면서 치르는 대가치고는 너무 가볍고 사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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