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오르내리기 : 비스듬하게 추락하기
에스컬레이터는 승강기라는 말 'elevator'와 계단의 구조라는 말 'scala'가 합쳐진 자동계단이다. 어릴 적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움직이는 계단의 리듬이 너무 빨라 한참을 주저하며 두려워 발을 딛지 못한 기억이 있다. 움직이는 계단들 중에서 첫걸음의 선택을 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여전히 기계는 공포스럽다.
계단도 놀이터가 된다. 가위는 두 칸, 바위는 다섯 칸, 보는 열 칸을 갈 수 있다. 이 불평등한 조건은 심리게임이 된다. 빨리 가고 싶다고 보를 낸다면 상대는 그 심리를 읽어서 가위를 내고 시나브로 앞서갈 것이다. 그런 가위를 내는 심리를 미리 읽어 바위를 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놀이를 한 것은 계단이 힘겨운 탓도 있다. 이기는 기운에 오르다 보면 그 힘겨움은 작은 경쟁에서 녹아버린다.
계단은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아무리 높은 건물에도 이용 빈도가 낮은 계단은 존재한다. 비상 에스컬레이터는 없어도 비상계단은 필요하다. 계단을 대신하려면 외부의 동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계단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에 힘이 센 것이다. 계단이 애초부터 어딘가에 의존한 형태였다면 진즉에 멸종했을 것이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계단을 두 발로 오르내리는 일이다. 계단은 주로 인공의 재료로 만들어지지만 자연과 닮았다. 앞뒤 구분이 없다. 세상 어떠한 계단도 오르는 용도만으로 혹은 내려가는 용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계단을 마주한다면 오르는 것이고 계단을 업은 듯 등을 진다면 내려가는 것이다. 얼마나 효율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