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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11. 2022

나의 초능력들 19

배웅 : 몸과 마음이 함께 하는 완벽한 작별인사

마중보다 배웅


아무리 바빠도 배웅은 한다. 내가 버선발로 나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만큼 가서 떠나보낸다. 배웅은 떠나보내는 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인사라고 생각한다. 문 앞에서 아무리 깍듯하게 보내도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삭제하듯이 현관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너무 매정한 풍경이다. 나의 아련한 시선을 받으며 가는 것이 아닌 차갑고 냉정한 문소리를 들려주어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보낼 때는 바로 문을 닫지 않는다.


배웅은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유추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학문을 논하는 지면이 아니기에 재미로 접근해 본다. 마중이 '맞이하다'에서 유래했듯이 배웅은 '바래다주다'에서 온 것 같다. 초기에는 '바래중'으로 생겨나 '배중'으로 변화하다가 '배웅'이 되지 않았을까. 든든하게 잘 먹고 둘이 나란히 배를 곰[웅]처럼 내밀며 걷는 모습을 본떠 만든 단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배웅이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또한 소리는 단어의 의미를 강화하고 보조한다. 마중을 발음할 때에는 눈이 커지고 밝은 표정의 입모양이 만들어지는 반면에 배웅을 소리 낼 때에는 미간이 구겨지고 끝소리에서 입이 동그랗게 모여 튀어나오며 눈가가 촉촉해지지 않는가. 아닌가.     


마중은 랑데부가 엇갈리는 위험부담이 있지만 배웅은 같이 시작하기에 어긋날 일이 없다. 충분한 교감 끝에 하는 배웅은 마중보다 안전하고 실패가 없다. 우리네 주거공간에서 마당은 배웅을 위한 공간이었다.  마당을 같이 걸어 나가며 호스트는 누추한 우리 집을 친히 찾아준 게스트를 위해 무어라도 하나 손에 쥐어 보내려고 고심을 한다. 그 거리는 딱 고민하기 좋은 시간을 마련해준다. 마당이 사라지면서 배웅의 공간 또한 잃어버렸다. 마중에 관한 시들은 넘쳐나지만 이미 충분한 배웅을 하는 우리 정서 때문인지 배웅에 관한 시는 드물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나를 찾아온 이를 부지런하게 배웅하는 일이다. 배웅은 만남의 설거지가 아닐까.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몸을 들썩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이별하는 모습이 촌스럽다. 인사하고 조금 더 가서 또 인사하고 이별이 아쉬워 이별 지점을 자꾸 연장한다. 사랑하거나 지나치게 우정하는 사이라면 이 시간과 행위는 반복되고 길어진다. 어차피 내게는 배웅들은 쿨하지 못했다. 늘 구질구질해도 좋다고 생각해고 그렇게 했다. 내 마음이 그대의 발목을 잡는데 어찌 그런 것을 아닌 것이라고 속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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