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Sep 15. 2022
나의 초능력들 53
수줍음 : 타인에 대한 기선 양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수줍고 싶다
아직도 타인과의 대면은 수줍고 어렵다. 성격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부단한 나의 의도와 의지가 반영된다. 수줍음을 결코 어리고 미성숙한 정서로 보지 않는다. 다소 뻔뻔해지고 대담해져야 진정한 어른은 아닐 것이다. 수줍음은 부끄러움, 쑥스러움, 창피함 등과 비슷하지만 다른 결을 가진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양심에 거리낌이 있거나 체면이 깎이고 떳떳하지 못한 경우 돌아와 혼자서도 느끼는 정서이지만 수줍음은 유독 타인 앞에서만 느낄 수 있다. 수줍은 표정은 다소 수동적이거나 약함의 표징처럼 보일 수 있기에 특히 남자들은 진실로 수줍어지려는 순간을 수치스러워 과장된 표현으로 덮어버리기 일쑤다. 수줍어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는데 스스로 달갑지 않은 열등한 감정으로 치부해 버린다. 수줍음은 어른의 금기 정서가 된다.
스스럼을 느껴서 수줍어지는 상태를 배제한,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경우에서의 부끄러움과 부조화에서 오는 어울림이 어긋나는 경우의 쑥스러움, 그리고 체면에 상처를 입거나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경우의 창피함에는 무언가 부정적인 흠들이 묻어 있다. 그에 비해 수줍음에는 어떠한 잡티도 없는 순수한 상태에 가깝다. 그저 앞에 있는 타자가 어려운 것일 뿐 그 어떤 불손함과 불순물도 없는 것이다. 상대에게 이길 마음이 추호도 없는 것이고 상대의 매력에 맞서지 않고 충분히 스며드는 나름의 적극적인 마음의 태도인 것이다. 나의 수줍음이 상대를 무장해제해 줄 수 있다면 우리의 대화는 더 크고 넓은 평야에서 펼쳐질 것이다. 수줍어지는 순간 상대보다 낮아지려는 마음이 된다. 혹자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 수줍음인데 가식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의도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귀한 감정과 정서들이 있다. (마치 어린 시절 어른들의 강한 감정표현이 너무 부러워 과장해서 따라 해보기도 한 것처럼. 누구나 나이마다 결핍의 감정과 정서가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 수줍음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그곳에서 호기심이 기생하기도 하고 상상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예술을 하는 이에게는 수줍음이라는 감정을 끝까지 폐기하지 않아야 예술적 꼰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타인과의 대면에서 여전히 수줍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단점이라고 여겼는데 점점 이것이 능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수줍음은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상대와의 거리에서 최소한 존중하려는 마음을 애써 마련하고 그 사이에서 상대의 가치를 최대한 이끌어내고 바라봐준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다. 왜 신은 인간에게 뻔뻔함을 어린 시절에 주고 성인에게 수줍음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열등한 뻔뻔함을 벗어던지고 여리지만 타인을 의식하고 공감하려는 수줍음을 죽는 날까지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