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Jan 24. 2023

어쩌다, 시낭송 016

기다림이라는 기다란 마음

I    기.다.리.다. (표준어)


기다리는 것은 철저하게 시간과 장소의 지배를 받는 일이다.

어느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장소는 반드시 몸 둘 자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몸은 기다리면서 사방천지를 마음속에서 헤맨다.

그러나 시간은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실제의 시간이다.

시간의 성질이 그렇듯이 의식할수록 속도는 더디다.

그리운 대상이 더 그리울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

기다리는 마음만 잘 다루어도 나 자신이 성숙해질 것 같다.

기다림 앞에서 누구도 쿨해지기는 쉽지 않다.

기다리는 순간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고 상대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상대가 늦어지면 내 안에서 나오는 말이 보통 때보다 유치해진다.

그러나 그것에 대범하거나 둔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는 진정 기다린 것이 아니다.

약속에 생각은 두고 있지만 나는 내 일을 하며 보낸 것이다.

그러기에 그런 이들은 기다림에 대담한 것이 아니라 비겁한 것이다.

내가 기다리다 지쳐 무너지거나 실망하는 것이 죽도록 싫어서 일부러 장소에 늦게 도착하거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던져놓는 것이다.

오롯이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 마음은 유리와 같아서 투명하고 깨지기 쉽고 눈부시다.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한 번씩 꺼내 보려고 우리는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II    기.달.리.다. (강원 전라 충북의 방언)


일부 지방 사람들은 '기다리다'를 '기달리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들은 기다림을 온몸으로 겪은 것을 말에 온전하게 담아 말하는 것 같다.

기다림의 마음이 그야말로 그리운 이에게 기어서라도 혹은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어유희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기달리다는 말은 유독 마음에 든다.

일반적으로 '하려고'를 '할려고'라고 말하거나 '가려고'를 '갈려고'라고 말하는 불필요한 리을 첨가의 표현보다 이유 있는 말 같아 보인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어떤 때를 기다리면서 

그것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달려가려는 조급함없이 가능하기는 할까.




III    기다려본다 가슴이 터지도록


https://youtube.com/watch?v=NooUtWYlig0&feature=shares

너를 기다리는 동안_황지우

이전 15화 어쩌다, 시낭송 0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