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씁니다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고 동기를 입혀보려 해도 쥐뿔도 없는 날이 있다.
어제도 썼고 그제도 썼고 지난주 월요일에도 썼으니
오늘도 써질 것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마치 어제도 살아 있었고 한 달 전에도 살아 있었으니
오늘도 당연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다.
그런데 반복과 패턴은 얼마나 익숙함으로 단련시키는지
그래왔던 것처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과 함께 관성의 습관이 작용한다.
오늘도 브런치의 글쓰기 창을 연다.
창을 열 때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꽃들의 향기가 나고 나비가 날아들면 얼마나 좋을까.
안개로 자욱해 한 문장 앞이 안 보이는 날이 있다.
아무것도 쓸 것이 없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막막한 글쓰기 창.
아래에 있는 작가의 서랍에는 무엇이 있을까 열어 보지만
손톱깎이 같은 공허와 철 지난 벙어리장갑 같은 먼지와 패스트푸드 영수증 같은 한숨만 가득하다.
그러고 올려다 제목을 보니 29회라서 그런가 푸념한다.
아홉 고개를 넘을 때는 힘이 든 거니까 넘고 나면 나아질 거야.
안 쓸 이유는 많지만 못 쓸 이유는 없는 것이 글쓰기 아닌가.
그냥 쓰기로 마음을 먹고 그냥이라는 말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그냥의 준말이 '걍'이기에 '그 양'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단다.
그렇다면 '그 양대로', '그 모습대로'가 된다.
어쩌면 그냥 쓰는 지금의 상태가 가장 솔직한 글쓰기가 아닐까.
지나친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 알고 있는 것들을 치장하고 과시하듯 써 내려간 글쓰기가 오히려 바른 글쓰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까 살짝 고민해 보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냥 쓰는 글쓰기도 인정해주고 싶다.
의식이 흐르는 대로 써 내려가는 글쓰기
정처 없이 떠돌다가 무언가에 심취해 쓰는 글쓰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위무하는 글쓰기
지금 당장 달리지 못하는 말이라고 당근을 뺏고 숨통을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봄은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입춘의 입을 '들 입'이 아닌 '설 립'으로 쓰나 보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맞이하는 계절의 순서라든가 어떤 계절의 장소가 있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기나긴 겨울의 두터움을 벗어버리고 여리디 여린 봄의 기운을 켜켜이 차곡차곡 얹어 세우는 것인가 보다.
그 힘겨운 세움의 결과를 놓치지 말고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라고 봄이라고 단정하게 일러 부르나 보다.
https://youtube.com/watch?v=j6hXAIB6wQc&feature=shares
그냥 좋은 것_원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