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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Feb 19. 2023

어쩌다, 시낭송 042

아날로그 불멸론

I   알파고는 바둑을 둔 적이 없다


아날로그가 여전히 좋다.

디지털 첨단기술이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아날로그가 친근하고 친숙하다.

거꾸로 세상을 산다고 수군거려도 어쩔 수 없는 취향이자 리듬이다.

차창을 내릴 때에도 자동버튼보다는 손잡이를 감아 돌리는 방식이 재미있다.

페달에 발만 올려도 전동으로 가는 탈 것보다는 온전히 체중을 실은 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가 신난다.

레버만 까딱하면 물이 쏟아지는 수도보다 마중물을 넣고 힘껏 펌프질해야 비로소 얻는 한 바가지의 물이 더 달콤하다.

어디서나 깨끗하게 들리는 라디오앱보다는 다이얼을 돌리며 주파수를 겨우 맞춰 획득한 디제이의 목소리가 더 감미롭고 간절하게 들린다.

급히 비보를 전할 때나 쓰던 전보 같은 문자메시지보다 쓰고 지우다 하얗게 밤을 새우며 우표에 침 발라 부친 분홍 손 편지가 그립다.

아날로그는 몸을 써야 일련의 프로세스가 이루어진다.

촌스러워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편하게 해 주려다 인간을 이토록 외롭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미안하니까 효율적인 삶이니 윤택한 삶이니 하며 위무하지만 인류가 속은 것이다.

아날로그가 인간에게 담보했던 정신적 풍요와 사색을 디지털에게 육체의 수고를 덜어주는 빌미로 도매급으로 넘긴 것이다.

인류는 편리해졌지만 우울해진 것이다.

그래서 애써 아날로그적 행위를 챙겨 누리려 한다.

아무리 에이아이가 발전해도 챗봇이 인간에 가깝게 대화를 하고 답을 제시해도 기계는 과정을 인간이 마련해 준 무수한 데이터를 가져다가 연산하고 수행할 뿐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서 기계가 세상을 점령한 듯 언론이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과연 그것이 대단한가.

놀랍게도 알파고는 이세돌처럼 바둑알통에서 무수한 돌 중에 하나를 골라 검지와 중지 사이에 그 돌을 끼우고 바둑판 위에 놓인 돌들을 건드리지 않고 우아하게 올려놓지 못했다.

그것이 바둑의 기본 행위이고 중요한 일부이다.

그러니 알파고는 바둑을 둔 적이 없다.

계산만 하고 실제로 바둑은 인간이 대신해 둔 것이다.

시작과 끝은 인간만이 선언하고 질문하고 스위치를 끌 수 있다.

본디 신이 아날로그로 인간을 디자인했다.

결국 아날로그가 사라질 수 없고 지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II    세상에 속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천 이백 쉰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세상에 속지 않기 위해서다.

책을 내기 위해 쓰는 이유보다 가성비가 높다.

그대는 왜 쓰는가 반문해 보았는가.

나는 이만한 이유를 가지지 못한다면 글쓰기는 방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털을 어루만지는 일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III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https://youtube.com/watch?v=dtAuW4HTsOs&feature=sh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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