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을 오르다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집 가까이 자그마한 산이 있어서 감사하다.
늘 바라만 보다가 오늘은 밟아보기로 마음먹는다.
등산이라고 산에 오른다는 말은 잘 쓰면서 하산은 은유로만 쓰고 잘 쓰지 않는 것은 그만큼 오르기 위한 마음먹기가 내려올 때의 다짐보다 강력하기 때문일 테지.
운동화끈을 고쳐 매고 나니 도파민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소 들뜨는 마음이 드는 것은 설렌다기보다 과연 내 느긋한 육체가 수많은 돌계단을 딛고 공중으로 던지며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까운 콩닥거림을 오독하는 탓이다.
아무리 작은 언덕 같은 길이어도 산은 산이었다.
대 여섯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뒤를 돌아보니 내 키만큼 높아져 보이는 경사의 산길이다.
벌써 숨이 차면서 마운틴스 하이(Mountain's High : 이런 말은 없다. 러너스 하이랑 비슷한 기분이 든다는 말이다)를 느끼는 걸 보니 내 몸에서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힘이 드는데 기분이 좋아질 리 만무하다.
정상에 올라(고작 언덕을 정상이라고 말하는 내가 정상이 아닐지도 몰라) 주먹으로 땀을 훔치고 나니 엔도르핀이 코스요리의 후식처럼 온몸에 퍼진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려는 몸을 돌돌 감아서 산에다 풀어놓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의 산행은 내 몸 안의 호르몬이 다했다.
산을 오르면서 몇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고 내려오면서 깡그리 잊어버렸다. 우뛰!
다음부터는 왼쪽 옆구리에 펜을 차고 오른쪽 겨드랑이에 노트를 끼고 산에 올라야겠다.
아침마다 조간신문이 현관 앞으로 배달된다.
21세기 첨단 시대에 나는 여전히 종이신문을 들고 읽는다.
신문에서 풍기는 아침 차가운 석유냄새가 좋다. (누구는 그러겠다. 기생충이 몸에 산다고)
신문에 박혀 있는 이야기는 모두 어제의 이야기지만 미래를 감지하게 한다.
사실 신문의 가치를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며 대부분 외면하고 있기에 너무 진부하고 지루하다.
신문지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신문의 존재필요성에 도움이 될 듯하다.
삼겹살을 구울 때 깔아 두면 바닥을 두 번 청소하는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해 주는 기능이라든가.
신문이 지속적인 습관의 힘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여준다는 걸 가끔씩 절감한다.
매일 모이는 신문지들이 한 달만 겹쳐 쌓아 두어도 한 손으로 들기에 묵직한 무게를 과시한다.
조금씩 조금씩이 반복되어 누적되면 엄청난 존재로 거듭난다는 걸 신문을 통해 자주 깨닫는다.
그 얇은 종잇장이 추운 날 사무실 소파에서 눈을 붙일 때 어찌나 포근한지는 구차해서 나만 아는 비밀로 붙인다.
https://youtube.com/watch?v=idazcYTT6rE&feature=shares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_기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