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오늘 하루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요즘 들어서 격주에 한 이틀은 집에서 지내는 날이 주기적으로 생긴다. 지난 연말에 한 건강검진에서 폐암을 진단받은 후로 더욱 그렇다. 노인은 흡연을 하지 않아 처음에는 오진이 아닐까 하며 쉬 받아들이질 못했다. 의사가 가리키는 가슴사진은 냉정할 정도로 분명하게 병명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 의사의 심각하지 않은 말투의 몇 마디가 희망을 놓지 못하게 한다.
-악성인 소세포 폐암에 비해 비소세포 폐암은 전이가 되지 않은 상태일 경우 치료만 잘 받으시면 됩니다.
비소세포라면 소세포가 아니라는 것이니 대세포인데 어찌 소세포보다 치료가 쉽다는 것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표적치료제가 많아 내 몸과 잘 맞으면 불치병은 아니라는 말에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돌아와서도 노인은 며칠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병든 자신의 몸이 누추하게 여겨졌다. 폐암과 직접 관련도 없이 몸져누워 지냈다. 지난 세월들이 두서없이 편집되어 눈앞을 지나갔다. 그때마다 자주 떠오른 얼굴은 노인의 낭송을 누구보다 좋아해 준 친구였다. 그는 이 세상에 없기에 그를 애도하는 방법으로 일 년간 그를 위해 낭송한 적이 있다. 날마다 휴대전화에 녹음해 놓을 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노인은 자신의 낭송이 듣고 싶어졌다. 죽은 친구를 위해 써 놓고 부치지 않은 편지 같은 낭송들... 가장 오래된 낭송부터 듣기 시작했다. 온통 죽음, 우정, 슬픔으로 점철된 시들만 골라서 낭송한 것 같다.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시들만 그때는 손에 잡혔다. 어떤 시는 중간에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 낭송도 있었다. 노인은 그저 침묵의 낭송을 몸으로 감상했다. 말을 할 때보다 말을 하지 않을 때가 더욱 진실에 가까운 듯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듣다 보니 친구의 얼굴에서 소년의 얼굴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를 위한 낭송 시들은 온통 자연과 희망을 노래하는 시들로 바뀌어 있었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으로의 강한 의지가 시낭송을 하면서 노인은 가졌나 보다. 녹음하던 때에는 몰랐던 노인의 감정 변화는 낭송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거의 8개월이 지난 후의 낭송 시들은 오히려 환희, 기쁨의 시들이 넘쳐났다. 노인은 낭송을 하면서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벗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전반부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친구를 애도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나를 깊은 슬픔으로부터 건져내었구나. 노인은 되짚어보니 낭송을 시작한 지 1년이 된 시점부터 왕성하게 활동한 것 같다. 심지어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자신이 지난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시낭송 포럼을 참석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저 조금 나아진 것이 아닌 다른 나로 태어난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