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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04. 2023

돈이라는 벽

0357

어김없이 벽을 마주하네.


때로는 문턱이라 가볍게 웃으며 넘기도 하고

때로는 철옹성으로 어찌할 바 몰라 주저하지.


누구는 벽을 수월하게 타는 스파이더맨이고

누구는 문을 내 자유로이 벽 사이를 오가고

누구는 창을 내 벽 너머 세상을 바라보네.


벽은 누구나에게 평등하려 했으나 우리가 벽을 만나자 어리석었지. 그건 벽이 주는 경고를 무시했던 탓에 그만 벽의 소유에만 급급하는 우를 범했네. 벽은 이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눈먼 채로 버티나니.


벽은 애초부터 수단이었으나 목적의 대상으로 여기게끔 욕망을 부추겼지. 벽은 그 어느 쪽도 완벽하게 허락하지 않을 텐데.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지. 벽을 가냘프기만 한 우리의 욕망을 벗겨줄 절대무기로 지명해 버리는 선택을!


이중 삼중으로 벽을 쌓는 건 잃을 것이 많은 자의 불안한 탐욕일 테지. 자신을 지켜줄 것이 벽만 한 게 없다는 건 그 얼마나 가엽고 빈약한 상상인가. 벽은 영원할 수 없네. 그 원리는 간단하지. 벽은 쌓는 것이니 세상의 모든 쌓는 방식으로 모양을 구축하는 것들은 한순간에 무너진다네. 덕, 신뢰, 돈처럼!


벽은 나를 보호할 만큼만 가지면 족하지. 나머지는 과잉 방어일지도 모르네. 그건 벽이 아니고 거추장스럽고 흉물스러운 건축물이지. 타자의 의도치 않은 욕망의 타깃이 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그땐 어서 철거하고 벽이 없는 이웃을 살펴야 하네. 이것도 진실돼야 보이는 일이라네. 근데 기적이 일어날 줄이야! 그대가 콧방귀 뀌어도 어쩔 수 없네.


나를 지켜준 두 번째 큰 벽을 허물고 이웃의 작은 벽을 쌓자 더 안전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벽의 역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테지. 어쩌면 세상은 상당 부분 벽의 역설로 이루워졌을지도 모르네. 이제는 이미 두터워진 자신의 벽을 미덥지 못해 켜켜이 쌓는 수고로움은 그만 내려놓기로 하세.


벽은 마음을 다루듯이 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보았네. 마음은 소유하고 잡히지는 않지만 이타적으로 크게 마음 쓰면 정작 대상보다 내가 더 커지는 마법을 말일세. 요즘은 가볍고 견고한 소재도 많으니 콘크리트만 고집하지 말고 자주 허물길 추천하네.


미니멀리즘이 공간에서 공간 사이  벽으로 관심을 옮겨갈 때가 된 듯하네. 늘 '사이'가 골칫덩어리 아니었나. 사이만 잘 다뤄도 인생에서 큰 실수는 없을 테지. 인간, 시간, 공간 모두 사이間을 품지 않나.


벽 앞에서 높은 벽이 원망스러워 울다가 여러 생각이 들어서 지청구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아서 미안하네. 그대는 현명하니 이런 나를 너그러이 용서하게.


벽을 보면 벽화를 그리고 싶고

벽을 보면 담쟁이를 심고 싶은데


나는 지금 하염없이 벽을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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