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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13. 2023

퇴고의 시간

0366

글렀다. 

이번 주는! 

술약속 따위는!

며칠째 퇴고의 시간이다.

내가 쓴 문장들을 말 그대로, 밀고(推) 두드리는(鼓) 중이다.

퇴고는 이처럼 좌충우돌하고 행위를 빈번하게 뒤집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다.


'퇴고'라는 말은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라는 시를 지으며
밀 퇴推를 쓸까 두드릴 고鼓를 쓸까 고민하는 중에
마침 지나가는 한유의 조언으로 글자를 결정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퇴고는 선택의 무한반복이다.

지우기도 하고 

덧붙이기도 하고 

교체하기도 하고 

통째로 걷어내기도 한다.

결정장애를 여실히 절감한다.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대안의 문장들로 뒤바뀌고

적절한 꾸밈이었던 단어들도 빼도 좋을 과잉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된다.


퇴고는 한계와 타협하는 협상이다.

더 나은 것으로 가져갈 것인가

더 못나지 않은 것으로 가는 것을 막을 것인가

어차피 퇴고하는 순간

흠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채를 가져가도 그 사이를 빠져나온다.

끝도 없는 한계라는 무지개를 쫓아 달려간다.

퇴고는 뒷모습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퇴고는 글쓰기의 8할이다.

책을 내기로 했다면 퇴고가 글쓰기의 전부다.

글을 잘 써두고 퇴고에 성실하지 못하면 써둔 좋은 글들이 썩는다.

내다 팔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된다.

그래서 퇴고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방부제이기도 하다.

방부제가 몸에는 나빠도 글에는 유용하다.

여전히 신선하게 글을 유지시키는 건 퇴고밖에 없다.

글은 쉽게 태어나지만 책은 퇴고 없이 쉽게 살아남지 못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퇴고부터 하고 글을 쓸 수는 없는가.(닥쳐!!)

퇴고를 해주는 AI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오호~! 있지롱)

퇴고는 글에다 퉤퉤퉤! 책에다 GO!GO!GO! 하는 건가.(움뫄! 뭐여?)


나는 지금 퇴고중이다.

엄청 예민한 상태다.

그러니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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