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n 18. 2023
가끔씩 사물이 말을 건넬 때가 있다.
가만히 놔둘 거야?
순식간에 스쳐가기에 사물이 한 말인 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책상에 어지럽게 꽂혀 있는 책들이 한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여럿이 한꺼번에 말을 해서 바람소리인 줄 알았다.
나는 알아듣고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정리를 하라는 것일까?
독서를 하라는 것일까?
순간 아우성에 놀라 몇 권을 골라 다른 곳으로 옮겨 꽂았다.
이내 잠잠해진다.
옷장은 자주 말을 한다.
책장의 과묵함에 비해 옷장은 문을 열 때마다 수다스럽다.
입을 것 없다고 내 배꼽에다 대고
투덜 대지 좀 마!
결코 경첩이 헐거워서 나는 삐꺼덕소리가 아니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문을 세게 닫으면 옷장은 지기 싫어 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성질 하곤!
사물의 나이는 인간보다 일곱 배가 빠르게 먹는다.
구입한 지 7년만 지나도 인간의 중년에 맞먹는다.
이 녀석들은 십 년도 넘었으니 우리 집 상전이다.
내가 하는 꼴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으니 얼마나 내가 한심하고 답답해 보일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것들은 나무처럼 지혜롭다.
움직일 수 없으니 존재하는 시간이 온통 사색이다.
사물의 말들은 깊은 사색 끝에 맺힌 이슬이니 들을 때마다 취할 지경이다.
♡덧말
사실 책들이 귀엣말할 때 책 좀 읽으란 소리로 알아먹었다. 요즘 여타 일들로 독서를 게을리한 건 책들의 말이 백 번 맞다. 그러나 못 들은 척하고 정신 못 차리게 책들을 뒤집어 기절시킨 채 거꾸로 꽂았다.
몇 가지 중요한 일정이 끝나는 대로 가장 시끄럽게 항의한 책들 순서로 읽어제낄 생각이다. 이놈들을 헌책방에다 내다 팔던지 해야지 원! 몇 번을 읽어달라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