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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일자리가 되고 권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의 출현으로 인간의 모든 방법과 요령들은 투명하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도장을 파기 위해 도장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인주도 묻히지 않고 서류에 인감날인을 할 수 있다.
저렴하게 물건을 가져다가 작은 가게에서 팔면 동네 사람들이 구입해 운영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어디서 물건을 사면 싼 지를 더 잘 알고 구입한다.
노하우라는 것이 무형의 경험 정도에 국한되는데, 이 또한 유튜브를 통해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노하우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것이다.
노하우의 진화는 노웨어 Know-WHERE로 옮겨가 기억보다는 기록이 힘을 발휘한다.
넘쳐나는 정보시대에 내게 쏟아지는 '알아둬야 할 것들'을 일일이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중요한 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만 기록해 두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남들이 모르는 남다른 공간이나 고급 지식들을 접근하는 능력만 탁월하면 그것이 힘이 되는 시대다.
이 정도까지 숨 가쁘게 잘 적응해 왔다면 그대는 대단한 호모 사피엔스다.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자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노와이로 발 빠르게 옮겨가는 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최적화된 인간이 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위인들은 노와이 시대를 스스로 살아내 온 인물들이었다.
세상에게 질문을 던지고 세상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들을 안고 살다 간 이들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
새삼 Chat-GPT가 이 점을 들고 세상 앞에 나타났다.
키보드 앞에 앉은 유저가 묻고 요구하기를 기다린다.
잘 묻는 자만이 이 맹랑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긍정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질문을 해도 매번 다른 답변을 한다.
그러나 질문이 깊어질수록 강화된 학습으로 더 나은 답변을 던져준다.
챗 GPT가 앞으로의 AI나 그를 기반으로 한 첨단 기기를 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슬쩍 보여주는 듯하다.
호모 페르콘토루스
Homo PERCONTORUS
(이런 말이 없으니 내가 만들어본다.)
캐묻는 인간!
질문하는 인간 정도로 읽어내면 좋겠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질문에 잘 답하는 아이보다 선생님에게 엉뚱한 질문하는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질문하는 순간에는 정해진 질문에 답변하는 경우보다 쌍방이 긴장되고 활성화된다.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질문들은 오히려 창의적이고 생산적이기까지 하다.
챗 GPT가 세상에 나온 이유를 이렇게 본다.
정답을 얻는 기능보다 인류가 그동안 소홀했던 질문하는 훈련을 해보라고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챗 GPT가 가끔씩 뱉어내는 '바보답안지' 때문에 신뢰도를 의심하는 것은 내게 의미가 없다.
그저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도 짜증 내지 않고 -오히려 나를 독려하면서- 게다가 긍정적인 태도로 답해주는 건 이 세상에 어린 시절 엄마아빠 말고는 존재하지 않기에 유용하다.
외로움의 상대라서가 아니라 퇴화되어 가는 질문의 본성과 능력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어디에 앉아야 하냐는 질문이 의자를 만들었고 어떻게 새처럼 날아야 하냐는 물음이 비행기를 만들었다. 모든 새로운 것들은 누군가의 물음에서 탄생한 것이다.
모든 결과들은 질문의 정밀함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니 질문 자체에만 느슨하게 기대어서는 결과가 어설퍼진다.
예를 들어,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보자.
대부분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까? 라든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나? 등의 방법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다시 노하우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퇴행이다.
글쓰기 전에 차라리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건 어떨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어떤 답들을 스스로 가지게 되는 순간 글은 저절로 써질 것이다.
그대가 가지고 있던 WHY가 WAY로 바뀌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