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Jun 22. 2023

구석 마니아

0375

구석진 곳이 좋다.

모두가 중앙으로 몰릴 때 구석으로 방향을 틀고 걸어간다.

이왕 구석으로 들어간다면 후미진 곳이 좋겠다.

굽어서 좋고

휘어서 좋고

깊어서 좋은 곳

굽어 있으니 숨어 있기 좋고

휘어 있으니 단조롭지 않고

깊으니 나만의 비밀 공간인 셈이다.


극장에서도 구석진 곳으로  좌석을 고른다.

벽에 맞닿은 자리일수록 좋다.

애꿎은 낯선 남자의 어깨에 기대 침을 흘리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그보다도 구석진 자리가 좋은 이유는 위생과 쿠션감에 있다.

나에게 좋아 보이는 자리는 다른 이에게도 좋아 보이는 자리이니 모든 자리의 상태가 동일하지 않다.

수많은 엉덩이를 영접한 자리는 대부분 좋은 위치에 있으니 이를 피해 뽀송한 의자에 앉으려면 구석이 제격이다.


버스에서도 단연 선호좌석은 맨 뒷자리 구석이다.

가장 승차감이 취약한 곳이 그곳인데 대부분 가장 높은 곳이라 뷰가 좋다.

게다가 냉풍바람이 나오는 곳과 몸의 거리가 버스에서 가장 짧은 곳이라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구석 중에서 최고봉은 방구석이다.

작년에 코로나로 일주일간 격리한 적이 있었는데 새삼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나는 진심 '구석너'이구나.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만 오천 칠백 스물여덟 가지나 되다니!


구석이 영어로 nook이라 쉽게 눅눅한 것을 상상하기 쉬운데 반드시 그렇지 않다.

구석만의 포근함과 아늑함을 맛본 이들은 구석 마니아가 된다.

지금도 사무실 구석에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보이지 않는 구석도 있는데 마음 한 구석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할 때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지 살핀다.

그러다가 자꾸 살피다가 귀여운 구석을 발견하고 미워할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진다.


왜 구석을 구석이라고 불렀을까.

구석!

구석이라고 소리 내 보니 구석은 발음이 구석답다.

무언가 막다르고 

무언가 웅크리는 모양새다.

안쓰러우면서 가냘프다.

구석은 거대해질 수 없는 숙명이고 

구석은 중앙이 존재해야 생겨난다.

구석으로 내쳐질 때에는 처량하지만

구석으로 찾아가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질문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