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n 25. 2023
어쩌다가 새벽 한가운데에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일어나면 울어대는 아침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멀리서 차소리만 파도소리처럼 이따금 밀려왔다 밀려간다. 서울 도심에도 새벽은 정숙하고 얌전하다.
새벽이 겉으로는 어둡지만 맑고 투명하다.
새로운 날의 첫 표지이기에 빳빳하고 도톰하다.
우리는 하루의 세를 새벽에 선지불 한다.
24시간 중 무려 6시간 이상을 떼이고 하루를 산다.
신이 하루의 기준에서 새벽을 맨 앞에 둔 것은 내놓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인색함을 잘 알기에 그리한 것이다.
그마저도 너무 과하다고 움켜쥐다가는 나머지 시간들도 저당 잡힌다.
25%의 시간세금을 내는 새벽이다.
지금 눈을 뜨고 있으니 절세 중인 셈이다. 이는 절대로 내게 유리한 상황만은 아니다.
오른 식사비를 아끼려 주섬주섬 간식을 먹다가는 제대로 챙겨 먹은 식사보다 비용이 더 든다.
다시 눈을 감으려니 새벽이 싱그럽고 탐스런 햇과일 같아 마다하기 어렵다.
새벽이 선생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그랬는데 이 새벽에 선생님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 애써 피해 돌아갈 것 같다.
오히려 새벽은 탐스러운 열매로 보인다.
손을 내밀어 따느냐 마느냐는 새벽에 눈뜬 자의 권한이다.
밝은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깜깜한 새벽에는 또렷하게 보인다.
열거해 보자면 이러이러하다.
어제의 부족한 내가 너무 생생하게 보인다.
내일의 막연한 내가 무척 분명하게 보인다.
잊고 살던 누군가가 랜덤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에게 말을 건네고 이내 지운다.
잠들어 있던 관심이 불쑥 계획으로 부풀기도 한다.
해 뜨면 사라진 안개지만 새벽은 판을 허용한다.
자칫 새벽에 오래된 서랍이나 먼지 뽀얗게 앉은 상자라도 여는 날에는 오후에 시간세금폭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새벽은 유혹이고 체면이다.
내가 거인처럼 보이는 시간도 새벽이다.
이는 새벽의 어둠이 온통 나의 그림자라고 착각한 데서 온다. 이는 새벽의 체면에 놓친 거지만 사실 새벽의 거대한 그림자는 잠든 자들의 것임을 안다.
새벽은 매일 온다.
그래서 새벽을 등한시하게 된다.
새벽은 결코 잠들지 못하는 자의 형벌의 시간이 아니다. 잉여가 아닌 창조의 시간이다.
새벽의 적절한 활용은 하루의 질적 변화에 크게 기여할 빌미를 던져준다.
어느덧 새벽이 뒷걸음치고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밖으로 난 커다란 창을 열고 새들이 물어다 준 신선한 공기를 온몸으로 맞는다.
참으로 좋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