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n 27. 2023
시시각각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오는 글은 겉으로는 다채롭지만 크게 보자면 두 부류로 구분된다.
나에 대한 이야기와 나로 인한 이야기다.
둘 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결은 다르다.
나를 이해한 이야기를 하느냐
내가 이해한 이야기를 하느냐
둘의 시비나 경중을 따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우선 나에 대한 이야기의 글을 살펴보자.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내 이야기만을 한없이 늘어놓는다고 그 누가 작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이러한 류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자기 위안과 객관화를 위한 적합한 수단이나 도구일 수 있다.
그저 우리는 우연히 길을 가다 담장 너머 남의 세간살이를 흘낏 보게 되었을 뿐 가장 중요한 독자인 자신을 위해 쓴 글이니 함부로 제단 할 수 없다.
어쩌면 나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소재나 주제를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 형태일 수도 있다.
자칫 신변잡기에 머물러 일기로 오해될 수 있으나 작가의 필력과 내공으로 그 벽을 뛰어넘는다면 어떤 글보다도 설득력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유리하다.
게다가 진성성이 담긴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자신을 투영할 여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확장하게 하는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나에 대한 이야기의 글쓰기를 잘하는 작가를 부러워한다.
막상 흉내 내어 써보려 하면 나의 이야기들은 어찌나 하나같이 빈곤하고 엉성하고 누추한 지 민망할 지경이다.
슬픈 사연이라도 곱게 문장으로 다듬어 볼라치면 그야말로 비루한 범인凡人의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져 이내 지워버리게 된다.
앞으로 글쓰기가 견고해지면 제대로 써보고 싶은 방식이다.
다음으로 나로 인한 이야기의 글을 짚어보자.
전자가 주관적인 글쓰기로 달려간다면 후자인 이 글쓰기는 객관적으로 쓰려고 부단히 자가검열하는 방식이다.
자칫 궤변으로 흐르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편협된 사고가 비칠 우려도 빈번하다.
최대한 상식적이고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 가까워야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장점이라면 정서나 가치관이 비슷한 부류들을 독자로 만난다면 작두를 탈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쓰기가 늘 그러하지만 전자의 글쓰기보다 이 방식은 쓰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자신의 지적 한계와 앎으로의 지적 충동을 동시에 실감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보다 글을 써내려 가는 속도는 더뎌도 더, 더, 더 생각하고 힘겹게 써 내려간다면 나중에 자신이 읽어도 유익한 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편이다.
글을 쓰기 전과 쓰고 났을 때의 변화를 더 크게 느끼는 방식이다.
글을 쓰기 전과 동일한 나를 쓰고 나서도 대면한다면 나는 글을 왜 써야 하는가에 회의적이다.
나는 늘 부족하기에 글을 쓴다.
책 읽기에서보다 글쓰기에서 더 큰 변화를 체험한다.
내가 늘 하는 말들을 쓰다가 보면 식상해서 그 말을 또 쓰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게 된다.
그때보다 그 말을 대체할 적합한 말을 찾는 여행과 모험이 시작된다.
이것이 글쓰기의 묘미가 아닐까.
우리말을 탐험하는 재미와 어려움! 이 모두가 글쓰기에서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