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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와 상관없이 긴 약속은 비용도 저렴하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두고 책을 펼쳐두면 내 몸이 당구장에서 흥청거려도 안도했듯이 헬스장에 등록하는 즉시 내 맘은 한결 가벼워지고 든든해진다.
물론 꾸준히 실천하는 이들은 훨씬 많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 긴 시간의 내 의지를 믿지 못해 피트니스센터보다 집에서 감당하는 편이다.
카페에 가야 집중이 되는 공부라면 가짜 공부 같다는 생각이 짙어서다.
모르는 이의 시선을 받아야 능률이 오른다는 이상한 심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운동은 어느 강도에 다다르면 그 효과를 땀으로 가늠하게 된다.
적어도 자세가 바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땀이 나지 않는 운동은 허투루 한 것이라 판단된다.
그래서 땀을 흘리면서 노폐물도 빠져나가고 수분도 빠져나가고 지방도 타서 날아간다.
이렇게 몸을 유의미하게 혹사하면서 어떤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느끼는데 몸을 사용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잘 수행해야 가능하다.
육체로부터의 땀을 내는 방법들은 너무나도 널리 알려지고 알고 있지만 정신적인 땀에 대한 원리는 간과하는 것 같다.
좋은 글쓰기는 정신적인 땀의 산물이기에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하다.
방청소를 하거나 설거지와 같이 몸을 쓰면서 땀을 낸다고 해서 이를 운동이라고 하지 않듯이 글자를 빈 노트에 끄적이거나 모니터에 하고픈 말들을 늘어놓는다고 글쓰기를 한다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몸을 운동의 구조 안에 제대로 넣어 작동해야 하듯 글쓰기도 생각의 구조 안에서 제대로 구동시켜야 한다.
쉽게 써야 좋은 글이 아니라 나만의 결로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내면사색이나 외면공부를 통해-포획해 온 생각의 결과인가가 중요하다.
운동도 바로 지방을 태우지 못하듯이 글쓰기도 바로 문장을 낳을 수 없다.
그러기에 글쓰기를 운동보다 낯설어하고 어려워한다.
운동은 땀 흘릴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 글쓰기에는 땀 흘리기가 없는 줄 안다.
보이지 않는 땀이라서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글쓰기를 마냥 정적인 행위로 여긴 것도 한몫한다.
나에게 맞는 프로그램으로 내 몸을 만들어가는 운동처럼 나다운 생각의 리듬과 속도로 한 걸음 더 그리고 한 걸음 더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간 후 적어보는 훈련이 절실하다.
동네 산책하는 정도의 운동량으로 내 근육이 미동도 하지 않듯이 신변잡기에서 어슬렁거리는 글쓰기로는 그나마 아스라이 남아있는 미세한 내 글근육마저 퇴화할 가능성이 높다.
|덧말|
글쓰기에 대한 자기반성적 성격이 강한 글이다. 몸도 게을리하고 글도 느슨히 하는 현재의 필자를 메타적 시선에서 스스로 꾸짖고 있는 글이다. 혹 이 글을 읽으며 괜히 뜨끔하거나 머리가 쭈뼛 섰다면 필자의 공식매거진 <매거진은 청바지가 아니다>의 필진으로 합류할 자격이 충분한 분이니 바로 도전하시라! 같이 정신적인 땀을 흘리며 서로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는 글우정도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