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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4. 2023

무용의 유용

0438

컨템퍼러리 발레

Contemporary Ballet를 보러 갔다.

고전 발레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연스럽고 발칙한 움직임을 추구한다.

기존의 엄숙미를 탈피하고 동시대의 화두를 춤에 담았다.

'두 개의 호흡'이라는 타이틀은 복합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삶과 죽음

존재와 존재 이면

찰나와 영원의 순간

댄서와 관객의 사이

발(몸의 움직임)과 눈(내면의 움직임)

언급하자면 끝이 없을 두 개의 상반된 호흡 사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클래식 발레와는 달리 미디어 아트를 적극적으로 무대에 접목시켰다.

빛도 춤이 되고

몸도 어둠이 되고

음악은 소음과 구분이 없었다.

딸꾹질 같은 하품 같은 소리들이 춤과 뒤섞인다.

인간의 몸에서 나온 소리들이 다시 몸에 걸쳐지고 그것을 두르고 춤사위를 펼친다.

소리도 호흡이었으니 두 개의 호흡은 몸에서 채집된 소음과 춤에서 흘러내린 호흡이 두 축을 이룬다.

춤은 자유로운 듯 절제된 듯 경계를 넘나 든다.

들락거리는 모습이 컨템퍼러리 발레의 진면목이다.

익숙했다가 낯설어지다가 하는 관객의 심정을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은 이미 알고는 농락한다.

댄서들은 수시로 아름다운 춤선의 추파를 던진다.

추파는 본디 눈이 하는 짓이지만 춤추는 몸의 끝에마다 눈이 달린 듯 추파를 대신할 말을 찾지 못하게 한다.

한바탕 발레의 춤사위가 끝났다.

한국의 춤도 아닌데 '신명 나게 논' 듯한 무대로 잔상이 남는다.


무용을 보는 내내 무용舞踊이 정말 무용無用할까를 거듭 생각했다.

어느 한 동작도 따라 할 수 없는 몸짓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이 위대해 보였다.

하나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어떤 이미지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태초의 원시적 의사소통 같은 무용이 첨단의 시대에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

아무리 언어가 현란해지고 소통의 수단이 다양한 시대를 살고 있어도 원초적 감정이나 고독, 슬픔, 외로움, 번뇌 등은 몸이 아닌 것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해 보인다.

무용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유용하다.

무용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언어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무용을 보면서 언어의 여백에서 그 위안과 위로를 받을 것이다.

무용은 인간의 거대한 두 번째 언어임에 틀림없다.

통역도 필요치 않으니 얼마나 효율적이고 유용한가.



지난봄에 본 무대와는 다른 경이와 재미를 안겨준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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