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03. 2023

코발트블루

0448

한참을 헤매다 지나고 난 후 돌아보니 그토록 찾던 길이었다.

살아가며 내 주위에 너부러져 있는 게 나와 무관한 것들은 거의 없다.

모두가 내게 날아온 창인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던진 부메랑이 순리대로 돌아온 것이더라.


꿈은 잠들 때 꾸는 줄만 알았는데 진짜 꿈은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직시해야 진정한 꿈이었다.

소금은 음식을 짜게 하기 위해서만 넣지 않는다.

말로 상세하게 전해야 상대에게 오해가 없을 줄 알았는데 진실로 이해시키는 말은 많은 단어가 필요 없더라.


세상에는 백 열한 개의 파랑이 있다지.

색들은 제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태생도 달라.

그중에서 가장 비싼 파랑이 코발트블루라네.

코볼트라는 요정의 눈처럼 어두운 광산에 푸르게 빛나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파랑이야.

굳이 이 귀한 파랑을 만나러 페르시아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될 거야.

지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

온통 코발트블루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아.

왜 이리 귀한 것들은 누구나의 가까이 있으며 손에 잡히지 않을까


올여름에 입지 않은 작년 여름옷은 내년에도 입지 않을 것이다. 버리자.

지난 오 년간 읽지 않는 책은 앞으로 오 년 후에도 읽지 않을 것이다. 비우자.

내 주위에 남아있으며 소모되지 않는 사물들은 늘 두 번째의 기회를 노리고 버텼으나 무산되었다.

삶에서의 우선순위 두 번째는 세 번째와 다르지 않고 스물두 번째와도 그 가치가 동일하다.

택시 합승하듯 거기를 들렀다가 저기로 갈 수 없다.

한 번 밖에 없다.

두 번의 키스도 없고 두 번의 포옹도 없다

목숨이 하나이듯이 두 번째는 가차 없이 폐기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옷은 옷장에서 장막을 치고 책은 책장에서 벽돌처럼 벽을 쌓는다.

그것은 기록도 자산도 아니다.

내가 방치한 두 번째의 폐기물이자 사체들이다.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똑같은 하늘을 내게 제시한적 없는 신에게 지혜 한줄기 배운다.

내가 살아갈 날들을 부디 안전하게 '복사해 갖다 붙이기' 하지 말아야지.

익숙한 순간을 만나면 기뻐하지 말아야지.

어렵게 구한 포켓몬빵에서 내가 소유한 띠부실과 같은 게 나온 것처럼 억울해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설친 잠 끝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