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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7.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52회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52




이야기라는 말은 본디 티베트에서 왔다. 티베트 말에 가깝게 소리 내어 읽으면 '이야르키'로 들린다. 이 짧은 글자에 세 개의 단어가 들어 있는데 '이'와 '야르'와 '키'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 단어가 이음동의어로, 죄다 입(口)이라는 거다. 다른 소리를 내는 입이란 글자를 나란히 연결한 글자가 이야기다. 세 명의 입이 모이면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일까. 아니면  세 명의 입을 거치면서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것일까. 그나마 분명한 건 이야기는 입들의 일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받아 든 신문기사도 이야기로 구성된 기자들의 가공물들이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보내고 자고 나면 꿈 이야기를 나눈다. 온통 이야기로 살아간다. 심지어 이별을 통보하는 그녀도 "난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떠나지 않았다.

-난 더 이상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없어요.

이야기의 유무는 생존과 공존을 결정짓는다. 이야기는 흥미의 범주를 넘어 먹고사니즘의 생계학이 되고 있다.




소년의 낭송에는 잉여의 감정보다는 여백을 지닌 감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얼핏 들으면 덜 채워진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소극적인 표현방식이 아니다. 줄곧 추구해온 방식인데 오래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이상하게 낭송하는 근본 없는 낭송가라고 비난하고 외면했다. 소년의 낭송은 철저하게 주류로의 진입을 거부당했고 그것이 서럽거나 아쉽지 않았다. 거리공연을 통해 만나는 관객들은 호응이 사뭇 달랐다.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기존의 낭송들을 모니터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장에 충실한 감정표현, 반복되는 어미에서의 호흡처리, 웅변가인지 변사인지 모를 톤 등은 소년에게는 빌려 입은 화려한 옷과 우스꽝스러운 소품들 같았다. 시낭송가는 광대보다는 이야기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것이 실패하더라도 덜 무모한 시도가 될 것이다. 시선을 주목받지는 못한 건 참아도 시시한 낭송을 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시시함의 기준은 소년 자신의 내부에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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