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Nov 16. 2023

우산의 형편

0522

비가 내린다

아침 지나자

해가 숨는다

젖은 그대로

종일 쉼없이

거릴 나선다

약속 없이도

그냥 그렇게


투두두둑

빗소리를 맞으며 우산을 펼친다.

우산은 비를 맞기 싫어서가 아니라 빗소리를 듣기 위해 필요하다.

우산이 돔처럼 둥그런 것은 나만의 음악감상실을 가지기 위해서다.

빗소리는 우산 안에서 특별하게 울린다.

비는 학처럼 최종 종착지에 다다른 후 단 한 번의 울음을 울고 죽는다.

비의 운명을 알기에 우산을 펼 때에는 누구나  비장해진다.

허공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듯 손끝에 힘을 모으고 민다.

탈칵

끝까지 밀어야 지팡이에서 우산으로 탄생한다.

흐물 했던 자태는 팽팽하게 긴장한다.

한 방울의 빗방울도 허용하지 않는다.

또로로로록

비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걷는다.

발 밑에는 빗방울들의 사체들이 질척거리고 세상은 온통 비의 진혼곡이 울려 퍼진다.

우산에서 최후를 맞는 비들은 안락한 결말이라 낭만에 가깝다.

우산은 비를 선별하고 비를 환대하는 인간의 배려로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비를 맞는다고 쓰러지는 것도 아닌데 우산을 쓰는 이유는 우산의 숨은 형편과 사정을 누군가가 정교하게 읽어낸 덕분이다.



https://brunch.co.kr/@voice4u/472


매거진의 이전글 반가운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