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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Dec 27. 2023

순조와 원활

0563

새해 나 자신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한 단어로 두 개를 꼽아본다.


순조順調
원활圓滑


순조는 아무 탈없이 예정대로 잘 되는 것이니 위태롭고 원활은 거침없이 잘 되어 가니 아슬하다.


무언가를 새로이 도모한다면 이 두 가지 형태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나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순조롭고 원활하다.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최선에서 긍정을 연결 짓지 않으니 탁자 끝에 놓인 물 잔처럼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러하다.


적어도 새로운 도전이라면 비포장도로 위의 트럭처럼 들썩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순조롭지 않아야 맞고 원활하지 않아야 옳다.

새로운 길이라면 더더욱 장애물이 즐비하다.


새 도로는 잘 닦아놓은 평탄한 길이지만 새 활로는 거칠고 힘겹게 온몸으로 밀고 나갈 길이다.


시작부터 순조롭고 원활하길 바라면 곤란하다.

과정에서도 어림없는 노릇이다.

무엇이든 매끈한 것은 다루기 불편하다.

게다가 이야기도 빈약하다.


https://brunch.co.kr/@voice4u/536


특히 글쓰기에서는 유의미하다.


글이 순조롭고 원활하게 써진다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하고 있거나 내가 아니어도 어디선가 누구라도 하는 이야기를 낯설지 않게 쓰고 있는 것일 게다.


내 안으로 깊이 천착해 쓰는 글은 한 문장도 순조롭지 못하고 한 단어도 원활하지 못하다.


쓰고 나서 내가 낯설어야 한다.

쓰고 나서 내가 부정해야 한다.


순조와 원활은 이러한 생성의 흐름을 수시로 뭉갠다.

평탄한 평범으로 최적화한다.


그리 될까 두렵다.

글을 쓸 때마다 넘어지기와 휘청거리는 것이 다반사다.


https://brunch.co.kr/@voice4u/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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