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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02. 2024

포기를 포개

0569

Noli Hastam Iacere


올해 슬로건이다.


매년 다음 해를 바라보며 한 두 달 전에 슬로건을 정한다.


신기하게 슬로건은 예언이 되어 그 해를 장악한다.


창을 땅 위에 내려놓지 마라


슬로건으로 명령문은 처음이다.


여느 해보다 절박한 한 해를 보낼 듯하다.


나를 지켜줄 창과 방패마저 힘겨워 내던지고 싶은 순간을 미리 경계하고자 한다.


https://brunch.co.kr/@voice4u/566

내가 들고 있는 창이 전투용으로만 쓰이지 않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십자가로

때로는 기둥으로

때로는 버팀목으로

때로는 여기서 저기로 건널 다리로


다목적은 전략이 없으면 혼란 그 자체다.

전보다 긴 호흡과 치밀해야 지치지 않을 것이다.


시들어가는 잎을 보면서도 물 주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넘어질 때마다 바닥에 박힌 타일의 패턴을 기억해 놓는다.

벽이 앞을 가로막으면 시나브로 월담하는 담쟁이의 시간의 궤적을 헤아리고 기록하기로 한다.


올해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무수히 다가올 것이다.

포기의 유혹은 유혹의 포기보다 달콤하다.

포기도 자주 하면 중독이 되고 무력해진다.


포기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으니 포기라는 글자가 포개지고 포기락포기락해지는 것 같다.


https://brunch.co.kr/@voice4u/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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