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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인형처럼 발랄할 줄 알았던 강아지가 축 늘어져 업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자궁축농증이라는 병명을 진단받았다.
이 질병은 암컷 강아지의 자궁에 염증이 생기고, 그 염증으로 인해 자궁 내에 고름이 차는 것이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란다.
며칠 전부터 사료를 먹지 않더니 밤새 낑낑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아프게 된다.
살아 있으니까 아플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고통은 제대로 살아 있는 생명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셈이다.
아픈 것이 무슨 특권 까지냐 반문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유일한 생명이 단 한 번의 죽음 앞에서 완전해지는 과정이다.
평상시보다 아플 때 살아있음을 역설적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이때야말로 삶의 본질에 정확하게 가닿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겸허해진다.
성숙해진다.
소중해진다.
진지해진다.
동물은 고통 앞에서 자연스럽게 무너지지만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인위적으로 세워 올린다.
지혜를
자신을
운명을
생명을
그 오랜 기간 동안 잊고 지냈던 그 무엇의 중요한 가치를 비로소
일으켜 세운다.
작디작은 강아지의 고통을 보면서 내 안의 고통이 함께 밀려옴을 느낀다.
내가 온전하게 살아있다면 나와 연결된 생명의 고통이 전염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일 오전 수술일정을 잡고 나니 고통이 오늘따라 더 가치 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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