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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16. 2024

소월의 일침

0583

예술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외롭다.


한 번도 간 적 없는 길을 함께 가자고 권해야 한다.


설렘보다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예술을 이야기하는 일은 그야말로 고독하다.


한 번도 증명한 적 없는 가설을 차마 안겨야 한다.


논리보다 공감을 끌어내는 일이다.


어제는 다수의 시낭송가를 상대로 '시를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몇 가지 에티튜드를 말하다가 문득 소월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이야기가 곁가지를 쳤다.


오산학교 시절 소월의 스승이었던 김억은 어느 날 소월이 가져온 다섯 편의 시를 보고는 이렇게 평을 했다.


네 시혼에는 내면적 깊이가 허약하구나


다소 억울하고 속상했던 소월은 <개벽>이라는 잡지에 스승의 평에 반박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한다.


소월의 첫 시론이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적어도 평범한 가운데서는 물物의 정체를 보지 못하며, 습관적 행위에서 는 진리를 보다 더 발견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어질다고 하는 우리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밤에 깨여서 하늘을 우러 러 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깨어 있어서 애처롭게도 기운 있게도 몸을 떨며 영원을 속삭입니다. 어떤 때는 새벽에 저가는 오 묘한 달빛이, 애틋한 한 조각, 숭엄한 채운의 다정한 치맛귀를 빌려, 그 의 가련한 한두 줄기 눈물을 문지르기도 합니다. 여보십시오, 여러분. 이 런 것들은 적은 일이나마, 우리가 대낮에는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던 것들입니다...

<개벽>1925년 5월 김소월의 '시혼詩魂'중에서


소월의 본디 의도와는 달리 시낭송에 임하는 낭송가들의 시를 마주하는 태도로 들린다.


늘 하던 대로의 습관적 시선으로는 정체될 수밖에 없음을 조용히 경고하는 듯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글쓰기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낮에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어둠 속에서 발견해 내는 정성(다른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과 전복(이 또한 대체어가 없어 보인다) 없이는 나아지는 글쓰기가 가능할 수 없다.


결국 나아지는 글쓰기는 기존의 나를 극복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voice4u/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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