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Mar 10. 2024

잘 모르는 일

0637

말 없는 문장을 쓴다.


질척한 말들이 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욕실벽을 타고 흐르는 비눗물이 어느 동물의 형상으로 보인다.


의도 없는 곳에서 발견되는 그림들은 나의 마음속 어느 것과 결부되어 있다.


다시 바라보면 표정을 바꾼다.


사용설명서도 꼼꼼하게 읽지 않고 타자와 만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 있을까.


정독의 시간을 유추하니 관계의 시간보다 7일이 더 걸린다.


마치 슈퍼컴퓨터에서 내일의 날씨 예보가 모레에나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과 같다.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제때에 알 수 없는 것은 이것만은 아닐 게다.



어쩌면 미리 알 수 없어야 더 이치에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끝마다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그의 대답은 차라리 진심에 가깝다.


가끔 모른다 말하는 것이 성의가 모자라는 것으로 오해한 게 미안하다.


부단한 궁리 끝에 나온 결과물이 거짓일 리 없다.


글을 어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말을 어찌 풀어낼지 모르겠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온통 모르는 일을 곁에 끼고 산다.


당장 안다고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겠지만


막막해서 다행일지도

막연해서 행운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알지 못한 것인지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인지만 알아만 해도 모르는 것의 정체는 드러날테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혹의 손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