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Apr 11. 2024

처지의 위안

0669

동물원 가기 전에 식물원이 있다.


식물원에는 동물의 이름을 달고 있는 식물이 있고

동물원에는 다른 동물 이름을 딴 동물이 살고 있다.


식물원에는 울타리가 없어 식물이 자유로이 뛰놀고

동물원에는 칸막이로 막아 동물끼리 눈인사도 없다


식물들은 포효하며 태양에만 시선을 주고

동물들은 광합성하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가슴 높이의 난관을 두고 누가 누구를 관람하는가.


개코원숭이들이 자기들끼리 꺄악꺄악 수다를 하는데 마주한 인간의 외모를 지적질하고 있다.


코끼리 모자가 사람들이 모이자 크게 소리치며 뛰어나와 모래로 목욕하고 풀을 먹으며 흘낏본다.


호랑이도 사자도 스라소니도 퓨마도 재규어도 유리벽 가까이에 비스듬히 누워 세상을 구경한다.


인간은 동물을 관람하고

동물은 인간을 구경하고


서로 유심히 한참 동안 쳐다본다.


세상에 갇혀사는 인간이 불쌍하다고 바라보고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이 가엽다고 측은해한다.


어느 쪽도 자유롭지 못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동물은 식물이 불쌍하고

식물은 인간이 불쌍하고

인간은 동물이 불쌍하고


연민을 품으며 위안을 받는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동물원에는 동물이 있고

식물원에는 식물이 있지만

인간은 동물원과 식물원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꽃이 되지도 못하고

범이 되지도 못하고

그저 측은한 인간이 되어 방황하고 있다.


식물과 동물은 분명하게 분리해 격리하면서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구분못해 방치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물의 앞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