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8
-하하. 그 꽃은 연산홍이야.
-아! 그그그그그그그런가요?
-한 줄기에 꽃이 몇 송이니?
-한 송이씩 피어 있는데요.
-철쭉은 여러 송이가 피거든.
-와우. 또 구분하는 기준은요?
-연산홍은 잎이 있는 상태에서 꽃이 피고 철쭉은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온단다.
할머니의 눈은 나보다 어두운데 자연을 보는 눈은 밝고 선명하시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 많은 꽃들과 풀들의 이름을 알고 계세요?
-가까이서 오래 바라보면 모두가 제각각의 매력을 뿜어내니까.
내 주위에 피고지는 꽃 하나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세상을 다 아는 척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다.
할머니는 얼마나 긴 시간을 자연 앞에서 머물렀을까.
직접 만져보고
직접 맛을보고
직접 꺾어보고
직접 심어보고
직접 말을 건네보고 직접 이름을 불러보다가 시를 지어주고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 중요한 행위들을 외면하면서 마음이 타인으로 향하는 근육을 퇴화시킨 것은 아닐까.
갑자기 연산홍에게 미안하고 철쭉에게 미안하고 진달래에게 미안했다.
너무나 다른 세 개의 세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 내 척박해진 마음의 원인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육체의 장애보다 심각한 마음의 장애를 실감하는 오늘은 제44회 장애인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