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노인의 방은 기다란 사각형인 오블롱 모양을 하고 있으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 정확하게 정사각형 구조다. 가로 세로 간극 길이만큼의 폭을 가진 옷장이 왼쪽 벽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침대 머리맡 통창을 뺀 나머지 니은 자 벽은 5단 책장으로 벽을 가리고 있다. 애초에 이런 수납 형태를 선호하는 거주자를 위한 책장이 벽을 대신하거나 매립된 구조라면 어떨까. 벽과 닮은 책장이 이중으로 겹쳐 좁은 방을 이토록 아늑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한때는 강한 지진이 밤새 방을 흔들어 잠들어 있는 노인의 몸으로 우박처럼 책이 쏟아져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은 죽음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 그 모양을 보고 책 무덤이라고 부르거나 누군가는 책고인돌에 묻힌 낭송가라고 기억할 동화 같기도 하고 시적이기도 한 삶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보다 소년에게 건넬 두 권의 책을 골라 가방에 넣었다.
- 이 책들을 소리 내어 읽고 노트에 천천히 옮겨 적어보게.
육필은 마음의 밸런스 측정기
한 권은 국내 단편소설이었고 다른 한 권은 얇은 철학서였다. 노인은 책을 펼치며 소년의 앞에 놓았다.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와 소년은 또박또박 읽었다. '두'와 '세수'에서는 장음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펜을 들어 필사하기 시작했다. 오래 방치되어 있던 펜은 공책에 자국만 남긴 채 잉크는 묻어나지 않아 공책 여백에 원을 세 번쯤 그리자 나오기 시작했다. 펜을 옮겨 쓰는데 히읗과 리을이 맘에 들지 않는다. 3획의 리을을 소년은 1획으로 새 을乙자처럼 쓰는 버릇이 있다. 쓰고 보니 디귿과 구분되지 않는다. '하루에 두 번'이 '하두에 루 번'으로 보인다. 고쳐 쓰려하자 노인은 다른 책을 건네며 펼친다. 함부로 편 책 오른쪽 맨 윗부분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히려 여유로울 능력이 없는 것이 게으름의 징표다.
부지런함이 왜 게으르다는 거지? 아궁이 속 불씨처럼 불쑥불쑥 궁금했으나 묻고 따질 겨를이 없다. 이번엔 균형과 형태가 불만이다. 글자 간격과 기울기들이 제각각 불손하다. 어려운 부탁을 하는 글씨였다면 내용과 상관없이 무례하다 느끼게 했을 것이다. 펜을 온몸으로 쥔 듯 굳어지고 열이 났다.
-말하기 전에 이렇게 읽고 써보게. 낭독도 예외는 아닐세.
노인은 쓰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각 쓰기라고 말했다. 그전에 필사가 좋은 훈련이라고 했다. 덧붙여 노인이 소년에게 당부한 말들은 이러하다.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말하기만 훈련하는 것이 가장 방법이나 유연성의 범주를 협소하게 한다. 환부에 직접 침을 놓는 것과 통증 부위로부터 가장 먼 곳에 놓아 몸 전체의 기와 혈을 통제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잘 다루는 걸까. 진정한 필요는 꼭 쓰이는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으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소년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