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71회

게으른 나무가 없듯이

by 이숲오 eSOOPo

71



노인과 소년은 나란히 길을 걷다 작은 벤치가 보이자 멈추었다. 나설 때보다 한 뼘 정도 그림자가 길어져 있었다. 벤치를 그늘지어주는 나무보다 큰, 맞은편에는 산만하고 풍성한 머리털을 가진 밀대 걸레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버드나무가 서 있었다. 키는 방금 지나온 전봇대보다 높고 나무둘레는 노인과 소년이 서서 두 팔을 잡고 감싸 안을 만하다. 노인이 청해 나온 산책이었다. 한참을 버드나무를 바라보았다. 고요한 바람사이로 새소리가 실려 다닌다. 입을 닫으니 귀에 들리는 것들이 풍성해진다. 버드 나뭇가지들이 내는 소리는 수다스러운 여인의 질문 없는 대답들 같았다.

-자네의 낭송이 저 나무 같기를 바라네.

순간 벤치 주위로 바람이 멈추고 세찬 매미소리도 지칠 무렵 노인이 낮게 읊조렸다.

-세상의 나무들은 잎이 진다고 나무로 존재하기를 포기한 적이 없어. 오히려 그걸 시간의 향기로 버텨내지. 한평생 살며 게으른 나무를 보질 못했네.

순간 바라본 노인의 입은 버드나무잎과 닮았고 목소리는 버드나무잎을 입에 물고 부는 피리소리 같았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나무를 다시 보자 버드나무는 흐트러진 자태를 고쳐 잡는 듯했다. 버드나무의 수많은 잎들이 입이 아니라 귀가 아닐까. 어느 섬에선 도로를 내기 위해 나무를 제거할 때 베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 주위를 둘러서서 몇 날 며칠 커다란 나무를 향해 욕을 퍼부으면 나무가 말라죽어 스스로 쓰러진다. 그건 나무의 잎들이 귀였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무수한 잎으로 세상의 소리들을 들으니 게으를 수가 없겠구나... 소년은 자신 안에서 떠들고 있는 수없이 많은 불필요한 입들을 모조리 잎들로 바꾸고 싶어졌다. 버드나무 옆 몇몇의 나무들은 겨우내 사라졌다고 했다. 노인은 잎을 포기하지 않고 붙든 탓에 그렇다고 했다.


인간은 실패하려 하지 않으려 하기에 매번 실패하는 것이다. 유충으로 3년간 물속에서 살다가 성충이 되어 세상에 나와 보지만 입이 퇴화되어 먹지 못하는 비루한 삶을 사는 하루살이를 보라. 과연 그들이 실패한 종일까. 무려 3억 년 전부터 세상에 살아남았는데도 그리 말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 짝짓기 비행을 하며 죽을힘을 다해 일생을 살아내기 때문이다. 단 이틀.. 사흘 동안!


이토록 자연은 게으를 겨를이 없다고 생각이 미치자 벤치에 기대앉아있던 소년의 구부러진 허리가 자연스레 곧추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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