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69회

다가가지 않고 다 가지려 하고

by 이숲오 eSOO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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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 내가 불편해질수록 결과의 수혜자인 세상은 딱 그만큼 편해지는 법이다. 불편 보존의 법칙은 시낭송에서도 적용된다. 불편이라 함은 이유 있는 불만을 스스로에게 짊어지우는 일이다. 소년이 언젠가 들었던 인사동 어느 갤러리에서 만난 큐레이터의 말 한마디는 그날 본 작품들보다 오래 남아있다.

-하루 만에 그린 그림은 일 년이 지나도 팔리지 않지만 일 년동안 그린 그림은 하루 만에 팔리죠.


소년 또한 하루 만에 시 한 편을 암기해 무대에 선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 시의 제목도, 그 무대의 풍경도, 관객의 표정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소년에게는 시간 시를 골라 준비하는 것은 집을 짓는 일과 닮았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고 주거하는 이들의 생활양식과 삶의 가치를 담아내야 했다. 이는 단 시간에 완성해내는 간편한 주거형태인 텐트를 치는 것과 사뭇 다른 일이었다. 높이 지어 올릴수록 깊고 넓게 기반을 다져야 했다. 문을 내고 창을 내는 일도 이유와 의미에 따라 재료와 크기가 달라졌다. 급히 지은 텐트에서는 몸을 온전히 세울 수도 없었고 그 안에서의 움직임은 한정되어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았다. 이에 반해 내 이야기를 충분히 녹여낸 건축물에서는 타인을 초대할 수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외적으로 견고했고 내면적으로는 풍성했다. 한 편의 시가 한 채의 집으로 고유의 모양을 가지고 탄생했다. 이러한 지난한 준비과정이 다소 불편하고 어려웠으나 반복하면 할수록 소년은 이 방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 소년의 시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간의 시들은 마치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집 짓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그 목적과 가치에 한층 변화를 주고 싶어졌다. 미약한 시낭송이지만 좀 더 크고 넓은 의미로 존재할 수는 없을까. 나의 이야기에만 갇히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공간으로서의 낭송을 고민하고 있다. 기존과 달리 톤과 시선부터 결이 달라야 하니 새로운 창법을 찾고자 하는 가수와 같이 마음이 두렵고 설렌다. 소년은 그 마음과 구상들을 일기장에 누드 크로키하듯 조심스레 적었다. 그리고는 그 말미에 'Todo Ira Bien!*'이라고 중요한 사안에 결재하듯 또박또박 정자로 적었다.



*토도 이라 비엔 :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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