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May 14. 2024

그리움 리필

0702

천천히 그리움을 채우는 시간.


단맛 없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도

읽다가 귀를 접어둔 책을 다시 펼치는 것도

생기 잃은 커다란 잎사귀 식물을 매만지는 것도

마을버스 노선길을 애써 걸어가는 것도

라디오에서 클래식 채널을 종일 듣는 것도


한껏 비워진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서다.


내게는 동력이 그리움이어서 그립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도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도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는 것도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도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떠나는 것도


보유한 그리움의 마일리지로 가능하다.



그리움은 플루트이다.


그리움은 그 자체보다도 다른 그 무엇과 만나면 공명이 극대화된다. 마치 플루트가 오보에나 피아노를 만나 더 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처럼.


그리움은 해소의 대상이 아닌 도발의 도구이다.


그리움이 채워지는 모습은 빈둥!


겉으로 보기에는 한심할지도 모르나 당사자의 내면에는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플루트의 불안정한 음들이 빈둥 안에서 파동한다.


리드없는 관악기인 플루트

부레없는 물고기인 상어

대책없는 감정인 그리움


이들은 모두 부정성을 품고있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래서 내공이 남다르고 다른 것과 만나면 폭발하는 에너지가 심상치 않다.


그립지 않고서야 어찌 이 삭막한 사막 위에서 살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해랑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