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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17. 2024

갈등과 갈증

0736

모자란 날이 좋다.


채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모자란 상태가 완전하다는 느낌이 강해서다.


(모자람은 '못 자람'이 아닌데도 그리 여긴다.)


넘치는 것이 아니어도 충분하다는 짐작이 든다.


오히려 가득 채워지는 순간 공허해지는 아이러니.


스케줄이 그러하고

통장잔고가 그러하고

가슴속 언어가 그러하고

나를 휘감고 있는 욕망이 그러하고

다시 못 올 지난날들의 시간이 그러하다.


모자람이 주는 여러 가지 메시지가 사뭇 귀하다.


갈증과 갈등


모자람은 목마름을 타전할까를 두고 갈등한다.


수시로 밀려오는 갈증을 두고 벌이는 갈등이거나

때때로 일어나는 갈등을 두고 닥치는 갈증이거나


갈등葛藤


글자를 유심히 뜯어보면 칡과 등나무가 얽혀있는 형상이다.


밀어내는 것이 아닌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게 갈등의 모양새다.


갈등의 이미지와 달리 밀착되어 있어 당황스럽다.


갈등의 형태에서 갈증이 포착된다.


끌어 당기지도 못하고 밀어 내지도 못하는 딜레마에서는 언어의 목마름이 밀려올 것이다.


내 것도 아니고 내 밖의 것도 아닌 관계의 목마름.


이렇게 갈등 앞에서 우리는 늘 갈증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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