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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청정해졌다는 것은 공기와 맞닿은 불순한 입자들을 공기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니 공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공기는 그대로이고 공기 주위를 치우는 것이고 공기와 공기 사이를 공기로만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공기 옆과 공기 가운데에 무엇이 있느냐가 공기의 청정 여부를 결정한다.
공기가 아니면서 공기인 척하는 것들을 분리하는 것이 공기청정기의 주된 노릇이다.
글쓰기는 생각청정기가 아닐까
생각은 아무렇지 않은데 생각 주변의 불순물들이 글을 쓰기 전에는 자욱하다가 글을 쓰면서 생각인 척 붙어 있는 잡념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에 필터를 끼우는 일
필터의 촘촘함은 문장에서 나온다.
기계는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작동하지만 생각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배출하면서 필터링한다.
이때 글쓰기는 가장 이상적인 필터링이다.
이에 반해 말하기는 가장 둔탁한 현실적인 필터링이다.
문장들이 켜켜이 쌓여갈 때마다 생각의 순도는 높아지고 깊어진다.
차분하게 수시로 글쓰기를 통해 필터링하지 않으면 어느 한순간 생각을 통째로 바꾸는 대안을 못 찾아 난감한 순간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