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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2. 2024

얄팍한 안도

0802

자신의 영화관에 대해 활자로 풀어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저서 '시간의 각인'*의 마지막은 간절한 유언처럼 이 문장들로 마무리된다.


... 임박한 종말론적 침묵의 징후들이 분명한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인간은 살아남을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어쩌면 생명의 물기를 빼앗겨 시들어버린 나무의 끈기에 관한 전설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내 창작 이력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내 창작 이력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의 토대로 삼았다. 한 수도승이 물을 길어 한 걸음 한 걸음 산으로 걸어가서 시들어버린 나무에 물을 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필요하다는데 일말의 의심도 없고, 창조주에게 믿음의 기적을 발하는 신념을 단 한 순간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수도승은 기적을 체험한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무줄기가 어린잎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기적일까? 이것은 진실이기도 하다.


그의 영감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프닝으로 기억될 '희생'의 롱테이크 첫 신으로 충격을 준다.

(개인적으로 엔딩 롱테이크 6분 52초 씬보다 오프닝이 더 훌륭하고 詩的이라고 본다)


여러 평론가들이 그의 간곡한 목소리를 영화 속 이 한 문장에 집중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리면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히려 러닝타임 145분이 지난 후 엔딩크레디트가 오를 때 타르코프스키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너무 얄팍하게 안도하지 마!


그는 시한부를 판정받은 후 생의 벼랑 끝에서 유작'희생'을 찍으며 인간 본연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사색한 후 길어 올린 처절한 문장들을 배우들의 입을 빌어 무수히 쏟아낸다.


그때마다 희망을 말하며 안도를 경계하는 듯했다.


영화 곳곳에서 보여준 상징의 이미지들이 그렇고

시작하자마자 흐르는 마태수난곡 39번째 아리아를  들으면서 그러했고

종말을 감지하는 설정의 장면마다 그런 환청을 들었다.


시 같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이따금씩 각성했다.


개봉 당시 영화 <희생> 포스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시간의 각인>, 라승도 옮김, 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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