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Aug 28. 2024

선풍기 세월

0808

선풍기 날개가 어지럽게 돈다.


지난여름 누구보다 분주했던 선풍기는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바람을 뿌리고 있다.


이제 보니 시곗바늘 도는 속도와 선풍기 날개가 도는 속도가 똑같아 새삼 놀란다.


시간은 쏜 살 같지 않고 도는 선풍기살 같다.


화살은 쏜 후 점차 속도가 떨어지지만 시간은 살아갈수록 선풍기 단계버튼처럼 점차 빨라진다.


빠르게 흘러가기도 하지만 주변에 바람을 일으켜 마음을 동요시키고 몸을 풍화시키고 여러 소중한 것들을 사정없이 날려버린다.


지구는 어제와 같지만 선풍기는 어제보다 맹렬하고 시간은 덩달아 달려간다.


슝!


우리가 매번 시간이 낯선 까닭은 선풍기 날개의 회전수에 기인하고 선풍기는 그 사실을 스스로 알면서 눈치 없이 돌아간다.


한 여름 뜨거운 태양만큼 시간을 소비했다.


가불한 시간들은 가을에서 돌려받을 것이다.


원운동은 시간을 앞으로 흐르게 하고 낙하는 시간을 동그랗게 모아 더디게 머물게 한다.


충분히 지쳤다면 시간의 가속도를 실감했음이다.


선풍기의 머리통을 비닐로 싸서 다락에 넣는 순간 과열된 시간의 엔진은 점차 식어 본래로 돌아간다.


아무리 빨라도 헛된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무심코 넘긴 책의 이미지를 무의식이 놓치지 않고 잘 챙겨 넣어두듯이 우리의 육체에 여름이 가동한 시간의 향기들이 선풍기 날개를 타고 스며들었다.


송송



매거진의 이전글 영혼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