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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28. 2024

철저한 준비

뼛속까지 버벅이

혼자일 뻔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 때마다 원고를 써서 대화 연습하는 꿈을 꾼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치며 꿈에도 우왕좌왕 불안하다. 표정은 멀끔한데 피부 아래 세포들은 이미 붉어져 뜨겁다. 새 사람은 어려운 거다.


글을 확인하고 목차를 확인하며 궁금한 것들을 메모해 두었다. 숫자도 젬병이고 사업적인 계산 따윈 어디 놓고 태어났는지 뭔가 숫자가 따라다니는 일을 타협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투명한 진공의 뇌가 된다.


동행의 긴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온종일 나를 위해 누군가 시간을 쓰도록 하는 건 언제나 어색하다.


내 질문은 틀렸다. 내가 생각했던 옳은 것들에 대한 세심한 준비는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휘청거렸다. 아주 세련되게 나의 잔 꿈들이 금이 가고, 그 금이 간 상처는 그의 능란한 언어에 아물었다.


나의 계획이 그대로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위태롭게 흔들거리다 금을 밟는다. 계속되는 좌절과 상처를 안고 있어야 했다면 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일어났을 것이다.


어버버버, 아, 안된다고요? 그건 제가 음, 지금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의 측은하다는 듯 눈빛과 친절한 제안이 까탈스러운 나를 흔들었다.


나의 이상과 현실을 통역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지옥에서 아무것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가도 말랑말랑 친절한 통역은 나를 천천히 천국으로 안내했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을 여행하는 나의 소설집을 한 땀 한 땀 잘 만들기 위한 상담을 하고 왔다.



실 꿴 바늘이 얼마큼 간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지, 만들 수 있는 무늬와 색깔은 어떤 것이 있는지, 열 권쯤 만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가는지 먼 곳까지 달려가 알아보고 왔다.


같이 하는 시간들이 축복인 사람, 오늘 나는 부드럽고 섹시한 그의 두뇌와 친절하고 세심히 최선을 다한 그녀의 맛을 톡톡히 보며 호강했다.  


사람과의 만남, 조금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 만나기 전 다시 또 원고를 써서 연습하는 꿈도 계속 꾸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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