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12. 2024

늙은 강아지

0823

늙은 강아지가 거실에 누워 있어요


지나가면 몸을 비켜주는데 꼼짝도 않네요


배를 보니 부풀다 가라앉다 죽은 건 아니에요


이따금 기침소리가 허스키해서 걱정인데 짖을 때에는 맹견이 따로 없어요


주인을 지키려는 건지 해치려는 건지 이제는 모르겠어요


한때 한 줌 크기였던 녀석이 요즘엔 한숨을 쉬어요


동물도 나이 들면 반쯤 사람이 되나 봅니다


이름을 부르면 오지 않고 내가 짖어야 옵니다


이름은 별이이고 요크셔테리어 종인데 왕실도 아니고 쥐도 없는데서 사니 제 능력발휘와 본능발현을 못해 별 신통치 않아 졌어요



그래서 민망할까 봐 치와와처럼 만들어줬어요


거울을 볼 때마다 치와와처럼 표정을 짓고 울음을 울고 걸음을 걸어요


사실 제 배가 나온 건 이 녀석 때문입니다


산책을 가면 강아지가 더 신나야 하는데 자기보다 작은 강아지를 보고도 겁내 다리 뒤로 숨어 얼마 가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자기가 강아지인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 점은 참 부러워요


내가 나인출 모르고 살아가면 근심걱정도 없을 거예요


내가 나다워야 된다는 강박과 내가 나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나친 욕심들은 강아지보다도 못한 삶의 질로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누워있는 늙은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어 봅니다


따뜻하고 보드라워요


고개를 더 깊이 안으로 말고 느리게 숨을 쉬네요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별이에게도 초가을 햇살은 나른하게 비춥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조화 완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