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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13. 2024

비좁은 가을

0824

가을은 바보다


추석도 여름에게 뺏겼다


구월은 가을인데 절반이상을 양보했다


그 나머지도 여름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시월과 십이월은 가을이 잘 지킬 수 있을까


구월은 여름에 치이고

십이월은 겨울이 노리고

시월은 지친 가을이 웅크린 채 겁먹고 있겠구나


가을은 을乙이다


모든 계절이 떵떵거릴 때 소심하게 비켜서서 길을 터주고 투명계절이 되어준다


이름은 가나다순으로 맨 앞이면서 계절 중에서 가장 매력 있으면서 한 걸음 뒤에 서서 다른 계절의 위세를 지켜보고 있다



가을은 지혜다


봄과 여름이 힘을 합쳐 그 긴 시간 아무리 푸르게 무성하게 숲을 가꾸어 놓아도 가을은 순식간에 붉게 단풍 지우고 가을 기운으로 잎을 떨구게 하고 가을바람으로 날려버린다


고집스러운 것들의 이면을 보게 한다


강한 것의 진면목을 깨닫게 한다


그리 낮게 호령하던 하늘을 저만치 밀어 올리고

저리 날뛰느라 몸불릴 시간 없는 말을 살찌운다


저지른 일들의 추수를 허락한다


날이 부족하다고 투정하지 않고 어느 계절을 탓하지 않는다


그런 가을의 성질을 닮고 싶어 서둘러 가을의 문턱에 기대어 어서 오라 노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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