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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27. 2024

달리는 작문

0868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글을 쓴다


가로수도 달리고 건물도 달리고 논도 밭도 달리고 저 멀리 산도 달리고 전깃줄도 달리고 글도 달린다


이른 아침의 도로 위를 자동차 바퀴가 지나가며 평평한 원고지를 펼쳐낸다  칸이 아닌 점선이다


글의 속도와 눈앞의 풍경 속도가 맞지 않아 문장을 자주 놓친다  그 사이로 새가 날아와 차창에서 울고 구름이 내려와 차창을 두드리고   바람이 말을 건다


차 안의 수다들로 글 박자를 놓친다 아침의 말들은 덜 깬 잠을 씻어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로 마른세수를 한다 웃음소리로 서로 눈곱을 뗀다


감성은 뭉게뭉게 피어오르지만 문장은 쪼그라든다


생각은 달리고 문장도 달리고 마음은 도망간다


몸을 멈추어야 글이 피어날 것 같아


시속 100과 시속 120에서의 문장이 다르다



2025-2026은 OO방문의 해


도로위 간판에는 지역 홍보문구가 보인다


떠나는 자에게 다른 떠남을 꿈꾸게 한다


고속도로의 오아시스인 휴게소에 들어선다


열심히 달려온 이들의 멈춤에서 글의 여백을 본다


화장실에서 펜의 잉크를 비우고 물로 채워넣는다


다시 달리면 투명한 물은 제 빛을 발하며 글이 된다


이제 글은 어디로 가게 될까


목적지를 향해 다시 차는 달린다 해는 더 떠오르고 하늘은 더 높아지고 수다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나무는 뒤로 달려가고 전봇대는 릴레이를 하고 중앙담은 여전히 견고하게 지키고 잎은 단풍지고 표지판 잔여거리는 조금씩 줄여들고 잠은 까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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